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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하 여력있다”…여운 남긴 이주열 총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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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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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릴 것이냐, 말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부작용은 충분히 예견 가능”
하성근 위원 “인하” 소수 의견
시장은 이르면 내달 인하 전망

 한국은행 이주열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6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선 기준 금리를 현재 수준(1.5%)으로 묶기로 했다. 그러나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둬 역설적으로 시장의 기대감은 더 높아졌다.

이 총재는 금통위 회의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국내 경제의 회복세가 주춤한 상태지만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매우 높아 향후 상황 변화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기준 금리를 동결하긴 했지만 국내 경기 부양(인하)과 불확실한 대외 변수에 대한 대비(동결)라는 두 선택지 사이에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 총재는 지난달 금통위 회의 직후 “(성장률) 전망을 낮췄으면 금리를 조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엔 동의할 수 없다”며 시장의 금리 인하 기대에 선을 그었다. 그런데 지난달 국내 경제 성적표가 예상보다 더 저조했다.

1월 수출액은 지난해 동기 대비 18.5%나 급감했고,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담뱃값 인상 효과가 소멸되면서 지난해 12월 말 1.3%에서 지난달 0.8%로 뚝 떨어졌다. 개선될 기미도 별반 보이지 않는다.

이 총재는 “앞으로 소비자 물가는 국제 유가의 큰 폭 하락 영향으로 당분간 1% 정도의 낮은 상승률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장기 물가상승률을 2%로 제시한 한은이 목표한 대로 물가를 끌어올리려면 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을 거라는 관측이 나왔던 이유다.

 그러나 한은은 일단 추이를 지켜보겠다는 입장이다. 이 총재는 “현재 금리에 추가 인하의 여력이 있다는 평가는 동의한다”면서도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선 기준 금리 조정에 좀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외 여건의 불확실성이 워낙 높아 금리를 조정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기대효과는 불확실한 반면 이로 인한 부작용은 충분히 예견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도 했다. 금리를 인하한다고 경기가 부양이 될 지는 미지수인데 비해 금리 인하로 인한 자본 유출 등의 부작용은 확실하다고 본 셈이다.

그는 사례로 일본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마이너스 금리 처방을 내렸지만, 기대와는 달리 엔화가 강세로 돌아선 점을 꼽았다. 이 총재는 “통화 정책은 경기대응 정책이지 구조적인 문제까지 해결할 수 있는 정책은 아니라는 것이 이번 일본의 마이너스 정책 금리 도입에서 명백히 나타났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은 역설적으로 이 총재의 발언으로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졌다는 반응이다. 시장 지표가 되는 국고채(3년물) 금리는 16일 1.431%까지 내려가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 시장에서 향후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내다 본 사람들이 그만큼 많았다는 의미다.

신동준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성장 전망이 하향 조정되고, 이 총재가 추가 금리 인하 여력이 있다는 시장의 평가에 동의하는 등 완고한 기조에서 물러선 모습”이라며 “이르면 3월 금리 인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하성근 금융통화위원이 0.25%포인트의 금리인하를 주장하며 소수 의견을 낸 것도 시장의 기대 심리를 높이는 데 한몫했다.

동부증권의 문홍철 연구원은 “한은의 ‘매파’인 하 위원이 소수 의견을 밝힌 지 3~4개월 뒤 금리가 인하된 사례가 두 차례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성태 연구위원은 “각종 경제 지표가 둔화되고 수출 부진이 지속 되면 한은에 대한 금리 인하 압박이 더 커질 것”이라며 “이런 경우를 대비해 이 총재가 시장에 ‘시그널(신호)’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다만 미국이 금리 인상을 지연하고 정부 정책 영향으로 가계부채 증가세가 완화되면 금리 인하에 따른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고 말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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