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김형경의 남자를 위하여

"그냥 살짝 밀쳤을 뿐이다" 말하는 남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기사 이미지

김형경 소설가

텔레비전 아침 방송에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이 있었다. 전쟁 끝난 지 언젠데 이산가족 찾기라니 싶어 프로그램을 찬찬히 시청한 적이 있다. 출연자 대부분은 어린 시절 가정이 해체되면서 연락이 끊긴 혈육을 찾고 있었다. 가정 해체의 원인은 십중팔구 가장의 폭력이었다. 남편의 폭행을 참지 못한 어머니가 집을 나가면 아버지에게 방치된 자녀들이 저마다 흩어졌다. 그런 사례가 매주 한 차례씩 방송할 만큼 흔하다는 사실이 충격이었다.

 미국 심리학자 제드 다이아몬드의 『남자의 이상심리』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1. 가정폭력을 일으키는 사람들이 모두 비정상인 것은 아니다. 그들은 많은 면에서 보통 사람들과 비슷하다. 2. 세계보건기구(WHO) 보고서에 따르면 배우자의 내밀한 폭력은 모든 문화·국가·사회계층에서 예외 없이 발생한다. 3. 전 세계적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이유는 놀랍도록 유사하다. 당사자의 기본 욕구가 충족되지 않았을 때, 특정 요구가 거절당했을 때이다. 4. 부부간 논쟁의 80%는 한 사람, 또는 두 사람 모두 술에 취했을 때 발생한다. 음주 시 폭력 발생 가능성은 평소의 18배에 이른다. 5. 남자는 폭력 행위의 정도나 결과를 축소 은폐하려는 경향이 있다.

기사 이미지

 제드 다이아몬드는 가정폭력 혐의로 구속된 남자들을 상대로 분노 다스리는 방법을 교육하는 강사였다. 가정폭력 전과자는 1년간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만난 남자들은 대부분 조용한 목소리로 말하며, 가족을 소중히 여긴다는 인상을 주었다. 동시에, 경찰이 출동할 만큼 심각한 폭력사건을 일으켰으면서도 “별일 아니었다”고 말한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냥 살짝 밀쳤을 뿐이다”라거나, “경찰만 오지 않았다면 아무 일 없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두 가지 이유에서 그럴 것이다. 자기 행위가 상대에게 어떤 피해를 주는지 역지사지하거나 공감할 능력이 없는 경우. 잘못은 알지만 자기 행위의 결과에 책임질 마음이 없는 경우.

 예전 어머니들은 “자식 때문에” 남편의 폭력을 참고 살았다. 온전한 가정이라는 이미지를 수호하기 위해, 폭력도 사랑의 일부라 믿으며 그렇게 했다. 요즈음 아내들은 남편의 폭력을 감수하지 않는다. 폭력 남편을 떠나거나 최소한 폭력 현장에서 몸을 피한다. 그 순간 제어하지 못하는 가장의 폭력성이 어린 자녀를 향한다. “그냥 살짝 밀쳤을 뿐”이지만 오늘도 아버지의 폭력에 목숨 잃은 아이 이야기가 들린다.

김형경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