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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살 이병 배상문…군대 오니 살쪄, 초코파이도 끊었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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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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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춥다. 지난달 31일 강원 원주에 있는 육군 모 부대 위병소를 통과했다. 군 부대 특유의 한기가 확 몰려들었다. 병역기피 논란을 일으켰다가 지난해 11월 뒤늦게 입대한 프로골퍼 배상문(30)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매일 2.5㎞ 구보하며 체력 키워
전역하면 30야드 더 칠 것 같아
1년간 병역 고민 원형탈모 생겨
스트레스 없는 요즘은 꿀잠 자

서른 살 이등병 배상문의 표정은 밝았다. 미국프로골프협회(PGA) 투어에서 2승을 거둔 그는 기자가 들고 간 비타민 음료 상자에 찍힌 사진을 보고 “와! 수지다”라면서 좋아했다.

강원도에서 복무 중인 배상문 이병은 휴가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는 “설 직후 첫 휴가를 나간다. 3월엔 일등병이 된다”면서 “휴가를 고대하고 있지만 날짜를 세면 오히려 시간이 안 간다고 해서 지금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5주 훈련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자대에 배치됐다. 부대원 180명 가운데 계급은 가장 아래인데 나이는 가장 많다.

배상문은 “앳돼 보이는 스무 살 선임이 ‘상문아’ 하고 나를 부르는데 무척 어색했다. 앞으로 어떻게 군대생활을 해야할지 갑갑했다. 그러나 일주일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내 입에서 존대말이 나왔다. 군대는 계급사회이기 때문에 받아들이고 있다”고 했다.

그는 체력 단련에도 힘을 쓰고 있다. 배상문은 “훈련소에서는 단 것이 먹고 싶어서 초코파이를 많이 먹었다. 운동을 많이 했는데도 살이 쪘다. 지금은 단 것은 삼가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 제대할 때 멋진 몸으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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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시절 배상문

그는 또 “투어에서 활동할 때 ‘10~20야드만 더 멀리 치면 훨씬 더 유리하겠다’고 생각했다. 그 거리를 늘리기가 쉽지 않았는데 군대에서 열심히 훈련을 하다보니 ‘20야드가 아니라 30야드도 늘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매일 부대원들과 함께 상의를 벗고 2.5㎞를 뛴다. 배상문은 “뛰고 나면 기분은 좋은데 춥긴 되게 춥다”고 했다.

그의 보직은 소총수다. 아직 이등병이지만 지고는 못사는 성격이어서 욕심도 많다. 배상문은 “사격은 호흡이라고 들었다. 호흡은 잘 하는데 이상하게 총알이 똑바로 안 나간다. 입대하기 전엔 퍼트가 안 되면 혼자 연습할 수 있었는데 사격은 혼자 마음대로 훈련을 할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다”며 입맛을 다셨다. 그는 “더 연습해서 백발백중, 만발만중의 사수가 되겠다”고 능청도 떨었다.

사회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훈련소에서 퇴소할 때 어머니가 이등병 계급장을 달아 주셨다. 그 전에 ‘어머니 은혜’ 노래를 부를 때 부터 감정이 북받쳐 엉엉 울었다. 우승할 때도 울어본 적은 없다. 그런데 훈련소에서는 내가 나이가 제일 많았는데도 많이 울었다. 불과 5주지만 훈련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배상문은 또 “군대에 오길 잘했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태극기를 보며 애국가를 부르다 감정이 울컥할 때가 있다. ‘20대 초반에 군대에 다녀온 뒤 한국을 대표해 올림픽에 나갔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생각도 했다”며 “입대 전 1년 동안은 군대 고민 때문에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스트레스 때문에 원형탈모증도 생겼다. 지금은 잠을 잘 잔다. 그러나 원형탈모증은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배상문은 “입대한 뒤엔 골프 클럽을 아예 만져보지도 못했다. 가끔은 골프를 잊을까 불안해서 휴식시간에 맨손으로 빈스윙을 해보기도 했다. 그래도 체력을 기르면 제대한 뒤에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방부 시계는 천천히 돈다. 늙은(?) 이등병은 거수경례를 마치고 부대를 향해 뛰어갔다.

원주=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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