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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삼성 선수들이 세트피스 전술 직접 설계한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한국 시간 2일 새벽. 스페인 마르베야에 위치한 프로축구 수원 삼성 전지훈련 숙소 호텔 로비에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두 그룹으로 나뉜 선수단이 각각 작전판 주변에 모여 열띤 토론을 벌였다. 두 그룹을 부지런히 오가며 선수들의 토론 과정을 지켜본 최성용 수원 코치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수원 코칭스태프는 2일 산 페드로 경기장에서 열린 세트피스 훈련을 앞두고 참가 선수들을 둘로 나눴다. 선수단의 두 베테랑 염기훈(33)과 곽희주(35)를 중심으로 팀 당 9명씩 배정했다. 미션도 줬다. 두 팀 선수들에게 자신들이 활용할 세트피스 전술을 직접 짜보도록 했다. 코너킥과 직접 프리킥, 간접 프리킥 등 다양한 상황을 제시하며 '세트피스 찬스에서 골을 넣을 방안을 직접 찾아보라'고 지시했다. 두 팀은 훈련장으로 출발할 시간을 한참 넘긴 시간까지 토론을 이어가며 열의를 보였다.

선수들이 직접 머리를 맞대고 주어진 과제에 대한 해결 방법을 찾는 '브레인스토밍' 방법은 최 코치의 아이디어다. 2000년대 초반 라스크 린츠(오스트리아)에서 뛴 최 코치가 당시 경험을 떠올려 훈련 프로그램에 적용했다. 매해 겨울 오프시즌을 이용해 유럽으로 직접 건너가 최신 전술 흐름과 훈련 방법을 받아들이는 서정원 감독도 최 코치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세트피스 대결은 뜨거운 분위기 속에서 치러졌다. 좌·우 코너킥 스폿과 골대 양쪽 측면 45도 지점, 아크 정면 좌·우 등 총 6개 지점에서 한 곳 당 3차례씩, 팀별로 총 18차례의 공격 기회가 주어졌다. 정석적인 공격 뿐만 아니라 기상천외한 변칙도 다수 등장해 탄성과 폭소가 끊이지 않았다.

승리는 '팀 곽희주'에게 돌아갔다. 지난해 수원 FC 임대를 마치고 복귀한 미드필더 김종우의 프리킥을 신인 공격수 김건희가 다이빙 헤딩슈팅으로 연결해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다. 곽희주는 "별도의 내기나 벌칙은 없었지만, 어떤 경쟁도 지기 싫은 게 프로 선수들의 심리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들 열의를 보여줘 더욱 즐거웠다"고 말했다.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세트피스를 직접 구성하도록 지시한 건 '협력'과 '창의'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두루 감안한 결정이다. 수원은 올 시즌을 앞두고 베테랑 골키퍼 정성룡(가와사키 프론탈레)과 수비수 오범석(항저우 그린타운), 공격수 카이오(부리람 유나이티드) 등을 떠내보낸 빈 자리를 신인급 멤버들로 채웠다.

의욕이 넘치지만 경험과 노련미가 부족한 선수단 구성의 특징을 감안할 때 선수들의 협력 플레이가 필수적이다. 서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팀워크를 다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효과적인 세트피스 방안을 고민하는 과정 자체는 '축구 지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된다.

최 코치는 "선수들이 직접 세트피스 방식을 만들고, 그것을 그라운드에서 테스트해보는 과정 자체는 수평적인 수원 선수단 문화가 뒷받침돼 가능하다"면서 "선수들이 내놓은 아이디어 중 몇 가지는 올 시즌 실전에서도 활용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았다"고 만족스러워했다.

마르베야(스페인)=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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