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물가 이상하다 했더니…한은 지수는 ‘반쪽’ 짜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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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애플이 스마트폰에 걸어놓은 특허권료를 100배 인상하면, 이 기술을 사용하는 삼성·LG전자는 스마트폰 출고가를 따라 올릴 수밖에 없다.

수입의 18% 차지하는 서비스 제외
소비자 체감 물가 제대로 반영 못해
한은 “모든 품목 지수화는 어려워”

그런데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수입물가지수엔 이런 변화가 전혀 포착되지 않는다. 수입물가는 제자리걸음인데 국내 스마트폰 제조회사가 난데없이 출고가를 올린 것으로 나타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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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최대 해운사 머스크가 운임을 대폭 올리면 독일로부터 들여오는 수입 자동차 가격도 뛴다. 특허·물류 등 수입서비스 비용이 뛰면 수입품 가격도 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머스크의 운임 인상 역시 한은 수입물가 통계엔 잡히지 않는다. 한은의 현행 수입물가지수 통계에서 서비스부문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은 현재 전체 수입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분의 1 이상인 283개 품목으로 수입물가지수를 산출한다. 한데 여기엔 농림수산·광산·공산품 등 3개 분야만 포함되고 특허·물류·광고·법률 등 서비스부문은 제외돼있다. 외국의 물류·특허료·광고비 등이 올라도 한은이 잡는 수입물가엔 전혀 반영이 안 된다는 얘기다.

그러나 서비스부문 수입 비중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국제연합무역개발협의회(UNCTAD)에 따르면 한국의 총 수입액은 2014년 기준 6405억3300만 달러로, 이중 서비스 수입은 17.95%(1150억1900만 달러)에 달한다. 이중 3분의 1 이상은 물류·운송 비용인 것으로 추산된다.

박형중 대신증권 연구원은 “국내 기업의 해외 물류·특허·광고 관련 지출이 상당하지만 수입물가지수에는 빠져 있어 체감물가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며 “세계적으로 디플레이션이 우려되는 상황인 만큼 외부 요인이 국내에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반영할 수 있는 통계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예컨대 국내 직구족 증가와 달러화 강세로 지난해 4분기 글로벌 택배회사 의 배송료가 20~30% 인상됐다. 그러나 수입물가지수는 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9월 80.84에서 12월 76.22로 4.62포인트 떨어졌다. 배송료 인상분이 수입물가에 전혀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은은 모든 서비스 품목을 지수로 만들어 가격 변화를 측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입장이다.

한국은행 김민수 경제통계국 물가통계팀 과장은 “특허·법률 등 서비스는 가격 조사가 어렵고, 건별 계약이라 협조를 구하기도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한은과 달리 통계 선진국은 수입서비스 통계를 오래 전부터 내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수입서비스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물류·운송 등 항목을 수입물가에 포함한다. 국제 무역환경의 변화를 측정하기 위해 수입서비스물가를 측정하며, 규모가 크고 비교적 가격 변화를 알기 쉬운 물류비용을 중요 통계 항목으로 삼았다.

여행·건설·금융·통신 등 17개 항목의 가격 변화 통계도 제공한다. 전체 수입물가지수에는 포함하진 않지만, 일반 소비자와 가까운 품목의 가격 변화를 알려주기 위해서다.

미 노동부는 기업 등 민간 부문의 참여와 홍보를 통해 통계 산출의 어려움을 극복했다. 일본은 수입물가지수를 따로 책정하지는 않지만, 생산자물가지수에 상품·국내서비스와 더불어 수입서비스의 가격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은행 관계자는 “수입물가는 생산비용 변화를 측정하는 중요한 통계로, 즉각적이지 않지만 시차를 두고 통화정책에 영향을 미친다”며 “기업으로선 경기 변화와 비용 추이를 가늠할 수 있는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정부가 서비스산업과 자유무역협정(FTA)을 확대하고 있어 앞으로 서비스 수입은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를 제대로 정책에 반영하자면 국내에서도 서비스부문을 수입물가에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정근 건국대학교 금융IT학과 특임교수는 “국가 경제가 커지고 발전할수록 서비스 산업의 비중도 늘어난다”며 “동시다발적 FTA로 수입물가가 국내물가에 미치는 영향도 커진 만큼 물류·교육·특허 등 서비스물가의 추이를 잘 살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와 관련해 하성근 한은 금융통화위원은 “그동안 원자재 위주로 수입물가지수를 봤지만, 앞으로 특허권·컨설팅·법률 비용이 증가할 것에 대비해 통계 보강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유경 기자 kim.yuk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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