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사무총장이 테러리즘 조장? 반기문 vs. 네타냐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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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20일 이스라엘을 찾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왼쪽)과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의 모습 [AP=뉴시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과 베냐민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요르단강 서안의 유대인 정착촌 건설을 두고 정면 충돌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26일(현지시간) 성명을 통해 “반 총장의 발언은 테러리즘을 조장한다. 테러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비난했다고 BBC 등 외신이 보도했다.

그는 “팔레스타인의 살인자들은 국가 건설이 아니라 국가를 파괴하는 것을 원한다. 그들의 살인은 평화와 인권에 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유엔은 오래 전부터 중립성과 도덕적 힘을 잃어버렸다. 반 총장의 발언은 유엔의 이런 상황을 전혀 개선하지 못하는 발언”이라며 유엔을 정면 비판했다.

네타냐후 총리의 비판은 반 총장의 발언에 대한 대응이다. 반 총장은 이날 뉴욕 유엔본부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역사상 억압받은 민족들은 점령에 맞서왔고 이는 인간의 본성이다. (정착촌 건설이)증오와 극단주의를 낳는 만큼 이스라엘은 정착촌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대인 정착촌에 대해 “팔레스타인 주민과 국제 사회에 모욕을 주는 행위”라며 “서안에 지은 정착촌은 향후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할 수 있는 가능성을 희박하게 만들고,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존엄성을 갖고 살아갈 수 없게 한다”고 했다.

26일 뉴욕 유엔본부 안보리 회의 중동 세션에서 발언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UN web TV]

 이스라엘의 맹방인 미국도 정착촌 건설을 강하게 비난했다. 대니얼샤피로주이스라엘 미국 대사는 지난 19일 “이스라엘 정부가 정착촌을 계속 허용해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이스라엘을 옹호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이는 이스라엘이 공약한 팔레스타인 독립국 건설을 전제로 한 '2국가 해법'과 배치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연합(EU)의 28개국 외교장관들도 지난 18일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비난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증오를 깊게 하고 있다. 최근 3개월간 정착촌 건설에 반발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이스라엘군의 충돌로 팔레스타인인 149명, 이스라엘인 25명이 숨졌다.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어렵게 하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로 자포자기한 일부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이스라엘 여성들을 상대로 묻지마 폭력을 저질러 이스라엘이 공포에 떨고 있다. 지난 25일 서안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남성 두 명이 24세의 이스라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숨지게 했다. 이스라엘 보안군은 이들을 사살했다. 지난 17일에도 이스라엘 여성이 팔레스타인 남성이 휘두른 흉기에 목숨을 잃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 인터렉티브 지도. 클릭시 분쟁 현황과 인구 숫자 등을 확인할 수 있다. [American Peace Now]

양 측의 갈등이 3차 인티파다(아랍어로 봉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87년과 2000년 1·2차 인티파다로 팔레스타인 사람 5000여명과 이스라엘인 1000여명이 사망했다.

이스라엘은 최근 150개의 정착촌 추가 건설을 승인하는 등 정착촌 건설을 가속화하고 있다. 지난 21일 서안지구 헤브론 시에서 1.5㎢ 토지를 몰수해 자국민들을 이주시켰고, 24일엔 자국 정착민 지원을 위한 장관급 위원회 구성을 발표했다.

 반 총장과 네타냐후 총리의 갈등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반 총장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깜짝 방문해 충돌 자제를 요청하며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는 ‘2개 국가 해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네타냐후 총리는 “충돌의 원인은 유대인 정착촌 건설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테러리즘”이라며 “2차 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도 나치 히틀러가 아닌 팔레스타인 지도자가 사주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기도 했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의 국경 변화 인터렉티브 맵 [visualizingpalestine.org]

 이스라엘은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무력으로 요르단 서안과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이곳에 이스라엘인들을 이주시켜왔다. 1972년 1만여명이던 유대인 정착촌 거주자들은 정착촌이 늘어나며 57만명에 이르렀다. 팔레스타인 주민 220만명이 사는 서안 지구에도 유대인 37만여명이 이주해 왔다.

문제는 정착촌이 국제법상 이스라엘의 영토가 아닌 곳에 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정착촌 건설을 불법이라고 경고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정착촌 숫자를 계속 늘려가고 있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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