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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 없다고…특허 받은 비타민C 화장품 광고도 못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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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김무성·정의당 심상정·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오른쪽부터)가 26일 서울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중장기 경제 어젠다 추진 전략회의’에 참석했다. 여·야·정 인사들과 산·학·연 대표 70여 명은 이날 규제 개혁과 기업문화 개선, 서비스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사진 강정현 기자]

바이오 중소기업 대표 김모(45)씨는 지난해 9월 비타민C가 들어간 화장품을 개발했다. 피부에 화장품을 바르면 비타민C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특허 기술을 적용했다.

상의, 정·재·학계 ‘경제전략회의’
법에는 기능성화장품 딱 3종류뿐
“포지티브 규제가 경쟁력 떨어뜨려”
김무성 “기업가 정신 발휘하게 최선”
문재인 “통일로 8000만 시장 조성을”

하지만 규제 때문에 장벽에 부딪혔다. 화장품법은 ‘주름개선·미백·자외선 차단’ 등 세 종류만 ‘기능성 화장품’으로 분류한다. 김 대표가 만든 제품은 ‘일반 화장품’으로 분류돼 비타민C 기능을 광고할 수 없어 판로 개척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김 대표는 “최근 글로벌 시장에선 피부재생이나 비타민C 함유 같은 기능성 화장품이 각광을 받고 있는데 국내 법은 오히려 개발을 제한한다”며 “우리는 두 다리를 묶고 미국·유럽 기업과 경주하고 있는 셈”이라고 토로했다.

세계적 각광을 받는 K뷰티가 정부가 허용한 행위만 가능한 ‘포지티브 규제’ 때문에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해외 음악 매체가 시설 등 기준으로 세계 6위로 평가한 서울 강남구의 O클럽은 젊은 ‘유커(遊客·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린다. 이들이 쓰는 돈만 하루 8000만원이다. 하지만 이 업체는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없다.

 이런 클럽은 DJ·바텐더 등 청년 문화 트렌드에 적합한 다양한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유흥업소로 분류돼 대출이 안 되는 것이다.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는 우리 경제의 현실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26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서울 중구 상의회관에서 ‘중장기 경제 어젠다 추진 전략회의’를 개최했다.

여·야·정 인사들과 산·학·연 대표 70여 명이 머리를 맞댔다.

이들은 ▶규제의 틀을 ‘포지티브’(정부가 허락한 사업만 가능)에서 ‘네거티브’(금지한 것 외에 모두 가능)로 바꿔 최적의 기업 환경을 만들고 ▶서비스 산업을 키워 ‘신(新) 직업·일자리’를 창출하며 ▶후진적 업무 관행을 개선해 반기업 정서를 없애자는 3대 어젠다를 도출했다. 한계에 직면한 경제체질로는 버틸 수 없다는 절박함이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난 30여 년간 경제성장률을 보면 10년마다 1~3%포인트씩 떨어진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상공인들이 생존을 위해 피 말리는 노력을 하고 있다”며 “마음껏 기업가 정신을 발휘할 수 있도록 3대 과제를 해결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내부적으론 성장 동력을 해치는 소득 불평등을 해결해야 하고, 밖으론 통일로 경제 영역을 넓혀 8000만 시장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세계가 정보기술(IT) 인프라를 토대로 4차 산업혁명에 돌입하고 있다”며 3대 어젠다를 계기로 ‘기업가 정신’을 확산시키겠다고 밝혔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김태윤 한양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새만금사업단지만 해도 규제를 네거티브로 바꾸면 관광·산업단지 등 경제 효과가 2조원이 넘는다”며 “창의·혁신이 중요한데 여러 사업들이 ‘규제 칸막이’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네거티브 규제로의 전환을 담고 있는 ‘행정규제기본법’이 2년간 국회에 계류 중인 점도 문제로 지적했다.

 서비스업 규제와 관련, 김현수 국민대 교수(서비스 사이언스 학회장)는 “청년 10명 중 8명이 서비스 일자리를 원하지만 규제 장벽이 걸림돌”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당장 ‘원격 진료’만 허용돼도 해당 분야는 물론 IT 기술과 연계한 스마트 헬스케어에서 수많은 직업이 창출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신용정보보호법에 막힌 사립 탐정, 약사법에 막힌 보조 약사 등 ‘진입 장벽’만 허물면 생기는 직업이 부지기수”라고 지적했다.

▶관련기사
① 서비스 규제만 풀어도 새 직업 우르르
② 미리 막고, 울타리 치고, 기준 없고…“규제 트라이앵글 깨뜨려 달라”

또 구시대 관행 탈피와 관련해 최원식 맥킨지 대표는 “저성장 속에서 근면성실만 강조하는 기업 관행이 반기업 정서를 부추긴다”며 “강압적 야근, 여성차별 등 낡은 문화를 벗어야 기업이 변화한다”고 강조했다.

이동근 대한상의 부회장은 “6개월마다 어젠다 이행 상황을 점검하고 새로운 과제도 발굴하겠다”며 공무원 행태 개선, 기업 지배구조 개선, 통일 등의 중장기 어젠다도 내놓겠다고 했다.

글=김준술·김기환 기자·강해령 인턴기자 jsool@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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