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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년 만에 유럽 가는 이란 대통령…A380 등 에어버스 114대 통큰 쇼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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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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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글로벌 시장에서 성탄절의 기쁨은 없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라는 캐럴은 들리지 않았다.

이탈리아 파이프 등 22조 계약도
금융 제재 풀려 현금 ‘실탄’ 두둑

경기는 바닥으로 향했다. 병신년 연초부터 중국의 성장세 둔화, 유가 하락 등으로 글로벌 경제에 삭풍이 몰아쳤다. 이때 저 멀리 중동에서 어둠 속 햇살 같은 한줄기 희망의 노래가 들려오고 있다. “기쁘다 이란 오셨네~.”

 이란이 돌아왔다. 경제 제재라는 빗장이 풀리면서 중동의 유망 시장으로 부상하고 있다.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기회의 땅 이란으로 몰려들고 있다. 일방통행의 짝사랑이 아니다. 문을 연 이란도 잰걸음으로 구애에 응하고 있다.

그 첫걸음이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의 유럽 순방이다. 1999년 모하마드 하타미 대통령의 유럽 방문 이후 17년 만에 길을 나섰다. 로하니 대통령은 정부 관료와 기업인 등 120명으로 구성된 대표단을 이끌고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방문을 시작했고 27~28일엔 프랑스를 찾는다.

 시장의 관심사는 로하니 대통령이 준비한 두둑한 쇼핑 목록이다. 벌써 첫 번째 잭팟이 터졌다. 이란이 27일 유럽 항공기 제조업체인 에어버스와 항공기 114대 구매 계약을 체결키로 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란이 ‘하늘을 나는 럭셔리 호텔’로 불리는 세계 최대 항공기 A380 여객기 8대를 포함해 A320·A321 등 에어버스의 여객기를 구매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구매가 성사되면 200억 달러(23조8800억원)를 넘는 대규모 계약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압바스 아쿤디 이란 교통장관은 24일(현지시간) 테헤란에서 열린 항공 관련 콘퍼런스에서 “이란이 보유한 항공기 250대 중 150대만이 운항할 수 있다”며 “중장거리용 400대, 단거리용 100대의 항공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국의 보잉사로부터 항공기 100여 대를 사고 싶다는 의사도 밝혔다. 다만 아직 이란 정부와 보잉사 간 협력 관계가 구축되지 않아 실제 거래가 성사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란은 이탈리아에도 선물 꾸러미를 푼다.

FT는 “로하니 대통령이 이탈리아에서 파이프라인 기업, 수자원 기업 등과 170억 유로(약 22조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란 경제는 그동안 경제 제재로 황폐했다. 인구 8000만 명의 중동 대국이지만 산업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2012~2013년 이란의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수입이 원활하지 않아 물가도 폭등했다. 2013년 6월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은 45.1%까지 치솟았다. 의약품을 포함한 각종 소비재와 자동차·항공기·발전소 등 기반시설이 낙후된 탓에 투자의 여지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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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등 서방이 동결했던 1000억 달러(122조원)의 금융자산을 활용할 수 있게 되면서 실탄도 두둑하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전체 인구에서 30대 이하의 청년층 비중이 높고(약 60%), 인터넷 부문의 잠재력도 충분하다”며 “이란은 잠자는 거인”이라고 보도했다.

 위험도 있다. 이란 핵 개발 관련 의혹이 제기되면 경제 제재가 다시 살아나고 진행 중인 거래와 투자가 모두 무효가 되는 스냅백(Snapback) 조항 때문이다.

하현옥·정원엽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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