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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란·동물세포·DNA … 바이러스 막는 백신의 산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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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3호 9 면

낮은 시장성으로 홀대받던 ‘백신’이 귀한 몸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선두주자는 고난도 기술의 집약체인 프리미엄 백신이다. 실제 머크의 로타바이러스 백신인 로타텍 개발에는 약 3억5000만 달러의 연구비가 투입됐다. 이후 로타텍은 2011년도 한 해에만 6억9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시장성을 스스로 입증했다. 또 베스트셀러인 화이자의 폐렴구균 백신 프리베나는 2011년 한 해에만 약 36억5700만 달러(약 4조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국내 상위 47개 제약회사의 매출액 합이 9조6005억원인 것을 감안한다면 엄청난 부가가치 상품인 셈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먹거리 중 하나로 떠오른 백신의 뿌리기술은 무엇일까. 바로 바이러스 배양이다. 백신의 원리는 전면전을 앞두고 사전에 적군의 전력을 파악하기 위해 벌이는 가상 전투와 비슷하다. 실제보다 훨씬 독성이 약하거나 죽은 바이러스를 사용한다. 가짜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몸은 면역반응을 일으켜 방어한다. 몸은 한번 싸워 본 바이러스를 기억한다. 강한 독성을 품은 진짜 바이러스가 들어와도 바로 항체를 분비해 공격을 막아낸다.


?백신은 바이러스 배양 기술이 핵심이다. 기술에 따라 배양 기간과 안전성·생산성 등에서 차이가 난다.


독감 백신 대부분 유정란 제조법 활용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유정란을 이용하는 것이다. 현재 사용하는 대부분의 독감 백신이 유정란 제조법을 활용한다. 무균 유정란을 약 10일간 부화시킨 후 유정란 내 배아나 요막액에 바이러스를 접종한다. 약 3일간 바이러스를 배양한 뒤 다시 회수해 분리·정제하는 과정을 거친다.


?관건은 필요한 시기에 대량의 유정란을 확보할 수 있느냐다. 예컨대 1도즈(dose·1회 접종분)의 독감 백신을 생산하기 위해 보통 1~2개의 유정란이 필요하다. 독감 바이러스가 유행할 때는 수억만 도즈의 백신을 생산한다. 많은 양의 유정란이 미리 안정적으로 확보돼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생산 지역에 조류 질병이 퍼지거나 자연재해로 유정란 공급에 차질이 생길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고려대 의대 박만성(미생물학교실) 교수는 “유정란 기반의 독감 백신 생산 시스템은 상당히 안정화된 방법으로 평가되지만 유정란의 안정적인 공급 및 사용 후 폐기물 처리와 같은 문제점이 뒤따른다”고 말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세포 배양이다. 무균 상태에서 동물세포를 대량으로 배양한 후 바이러스를 동물세포에 감염시켜 백신을 생산하는 식이다. 여기에는 주로 원숭이·개의 신장세포가 쓰인다. 일본뇌염 백신, 소아마비 백신, 로타바이러스 백신의 일부가 동물세포 배양법으로 만들어진다. 동물세포 배양을 이용하면 백신의 생산기간을 줄일 수 있다. 전염병 대유행이 발생했을 때 대응하기 훨씬 용이하다.


백신 생산 기간 단축한 동물세포 배양세포주 공급이 안정적이고,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유정란 단백질 성분이 포함돼 있지 않다. 그러나 박 교수는 “세포 배양을 위한 배양액, 혈청 등이 필요하므로 유정란에 비해 생산단가가 높다”며 “정제 과정을 거치지만 세포 유래 찌꺼기가 들어갈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유정란 및 세포 배양을 기반으로 한 백신 개발·생산이 활발하다. 4가 독감백신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 허가를 받았지만 생산 방식에서 차이를 보였다. 녹십자는 백신의 명가 격인 유정란 생산 방식을 택한 경우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허가 당시 “아시아 제약회사 가운데 4가 독감백신 허가를 받은 것은 처음”이라며 “국내와 글로벌 시장에 공급할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에 SK케미칼은 차세대 기술 격인 세포 배양 방식을 활용했다. 세포 배양 방식으로 개발한 4가 독감 예방백신이 허가를 받은 건 세계 최초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세포 배양 방식의 제품은 생산량과 생산 시기를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며 “원료 공급에 영향을 받지 않아 세포를 이용한 백신 개발이 가속화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재조합 DNA 이용한 백신 개발 연구최근에는 유전자 재조합을 기반으로 한 백신 제조 방법이 주목을 받고 있다. 유전공학적인 기법을 이용해 여러 세포에서 항원으로 작용하는 단백질 부위만을 선별해 제조하는 것을 말한다. 특히 재조합 DNA를 이용한 백신은 가장 큰 관심거리다. 병원체를 이용하는 기존 백신과 달리 인체 조직에 유전자 변형 DNA를 주입해 면역계에 영향을 끼친다. 유전자가 생체 내에서 발현되면 항체 생성과 함께 면역반응을 동시에 유도할 수 있다. 현재 자궁경부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같은 질환 및 바이러스 정복을 위해 재조합 DNA 방식이 연구되고 있다.


?이런 방법은 병원체를 직접 다루거나 바이러스를 유정란·세포에 적응시켜야 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대부분 연구 초기단계에 있지만 백신의 생산 시간을 절약하는 데 기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박 교수는 “DNA 백신의 임상시험이 전임상과 달리 우수한 결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하지만 백신 전달 시스템의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이 발전하고 있어 기대된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kim.sun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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