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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로봇 ‘심판의 날’이 다가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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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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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에서 로봇이 심판을 대신해 볼 판정을 할 날이 머지 않았다. 포수 뒤 심판 위치에 한국 최초의 인간형 로봇 ‘HUBO’가 스트라이크 콜을 하는 모습을 합성한 사진. [중앙포토]

“스트~라이크!”

옥스퍼드대 연구팀 미래 직업 전망
“심판 역할, 10년 내 로봇으로 대체”
ESPN도 “볼 판정 컴퓨터 활용 필요”
야구팬들 정확한 판정 요구 높아져
한국 2년 전 비디오판독 제도 도입
올해부터 스윙 등 판정 대상 늘려

 마스크를 쓴 야구 심판이 우렁찬 목소리로 외친다. 결정적인 순간엔 온몸을 비틀며 콜을 한다. 팬들은 심판의 판정에 일희일비한다. 그런데 로봇이 심판을 대신한다면 어떨까.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영국 옥스퍼드대 연구팀은 앞으로 10년 안에 로봇이 대체할 직업군을 분석한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스포츠 심판’은 로봇으로 대체될 확률이 90~100%에 이르는 것으로 전망됐다.

 이미 심판 역할의 일부를 기계가 대신하고 있다. 축구·배구·테니스에서는 라인 판정을 비디오 분석을 통해 한다. 미국 스포츠 전문 매체 ESPN의 칼럼니스트 댄 짐보르스키는 20일(한국시간) “이제 스트라이크-볼 판정도 컴퓨터를 활용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심판의 판단 오류가 메이저리그(MLB) 타자를 마이너리그 트리플A 타자로, 트리플A 타자를 MLB 타자로 만들 수 있다. 이런 변수를 제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미 1950년대 스트라이크-볼을 판정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했다. 제너럴 일렉트릭(GE)이 디자인한 이 로봇은 전파를 이용해 공의 위치·궤적·속도 등을 탐지·분석해 스피커를 통해 판정을 알릴 수 있었다.

그러나 날이 흐리면 먹통이 되고, 하프 스윙을 구분하지 못하는 등 오작동이 심심찮게 나왔다. 공 하나를 판정하는데 300달러가 넘는 비용이 들자 GE는 결국 사업을 포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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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1년엔 야구공의 위치 데이터를 자동 수집해 궤적을 분석하는 시스템인 ‘퀘스텍’이 개발됐다. 2003년부터 MLB 11개 구장에 이 시스템이 설치돼 심판 스트라이크 판정의 오류를 잡아냈다.

그러나 선수와 심판들의 불만이 커지자 ‘퀘스텍’은 결국 자취를 감췄다. “오류가 있더라도 볼 판정은 사람이 해야 한다”는 올드 팬들의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면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스포츠비전’은 3대 이상의 카메라를 통해 투구 궤적을 3차원으로 분석하는 피치에프엑스(PITCH f/x) 시스템을 내놨다.

지난해 미국 독립야구단 산 라파엘 퍼시픽스는 이 시스템을 활용해 실제 경기에서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내리는 데 활용했다. 로봇 심판이 등장한 건 아니고 컴퓨터가 내린 판정을 사람이 콜하는 방식을 썼다.

지난해부터 MLB는 미사일 추적 기술을 결합한 ‘스탯캐스트’를 론칭했다. 피치에프엑스보다 오차가 줄어든 시스템으로 사실상 ‘로봇 판정’을 위한 기술적 준비를 마쳤다.

 야구 팬들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다양한 각도의 화면과 풍부한 자료를 제공받으며 중계를 시청하는 팬들이 더욱 정확한 판정을 요구한 것이다. MLB는 지난 2014년 비디오 판독 시스템을 도입, 논란이 있는 심판 판정을 영상을 통해 재확인하고 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도 2014년 후반기부터 비디오 판독을 통한 심판 합의판정 제도를 마련했다. 도입 2년째인 지난해 한국 프로야구 합의판정 시도는 423회였고, 39%의 판정이 비디오 판독을 통해 번복됐다. MLB에서는 비디오 판독 대상의 49.29%가 오심으로 밝혀졌다.

정금조 KBO 운영육성부장은 “합의판정 제도가 도입된 이후 판정 시비가 줄었다. 공정성을 확보하면서 팬들과 구단의 만족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영상의 힘을 빌린 덕분에) 심판도 스트레스를 덜었다. 합의판정 도입은 절반 이상의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했다.

 KBO는 비디오 판독의 영역을 점차 늘려가고 있다. 지난해까지 합의판정 대상은 외야 타구의 페어·파울, 포스·태그 플레이에서의 아웃·세이프, 야수의 포구, 몸에 맞는 공이 대상이었다. 올해는 타자의 헛스윙과 파울 여부도 합의판정 대상에 포함됐다.

 오심 논란이 가장 자주 일어나는 스트라이크-볼 판정은 아직은 합의판정 대상이 아니다. 정 부장은 “이르면 올 하반기엔 미국처럼 별도의 판독 센터를 구축할 것이다. 합의판정 대상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지만,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포함하자는 논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첨단기술이 발전한 미국도 볼 판정 시스템을 100%로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스트라이크존 만큼은 여전히 심판의 주관적 영역에 속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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