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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③ 헤이딜러에게 물어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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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이정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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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 논설위원

애초엔 용기를 북돋워주고 조언 한마디 해줄까 했다. 건방진 생각이었다. 듣고 배운 것은 오히려 나였다. 불치하문(不恥下問)-나이 어린 사람에게 배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란 옛말만 되새기고 말았다. ‘방년’ 스물다섯. 온라인 중고 자동차 역경매 스타트업 헤이딜러의 박진우 대표 얘기다.

 ‘헤이딜러 사태’는 현재진행형이다. 언론과 업계에선 ‘창조경제의 성패 가늠자’로 부른다. 옛날식 규제가 창조적 사업을 좌절시킨 사례이기 때문이다. 헤이딜러는 지난해 1월 출범했다. 고객이 내놓은 차를 딜러에게 경매로 판다. 투명 거래를 위한 우량 딜러 확보가 관건이다. 엄격한 룰을 적용해 680여 명의 불량 딜러를 퇴출시켰다. 지금은 650여 명의 우량 딜러만 남았다. 1년 만에 거래액 300억, 매출 약 5억원을 올렸다. 서울대생 3명으로 시작해 현재 직원은 15명으로 늘었다. 중소기업청에서 유망 창조경제 스타트업에 주는 1억9000만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그러나 지난 5일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자동차관리법이 개정되면서 졸지에 ‘불법’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자동차관리법 60조는 ‘자동차 경매를 하려면 시도지사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승인을 받으려면 3300㎡ 이상 주차장, 200㎡ 이상 경매실을 갖춰야 한다. 원래 오프라인 업체에 적용하는 규정이었지만 정부는 지난해 말 법을 바꿔 온라인 업체도 포함했다. 명분은 소비자 보호다. 바뀐 법은 다음 달 초 시행된다.

 “왜 자동차는 온라인으로 사고팔면 안 되나요. 신발을 보세요. 직접 신어봐야 하니 안 된다고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온라인에서 다 사고팝니다. 길이·폭·색상까지 세세한 표준안이 나오면서 그런 문제를 해결했어요. 철저한 반품 정책이 한몫했고요. 그런 게 안 되는 업체는 자연히 시장에서 퇴출됐어요. 온라인화의 숙명이죠. 소비자 보호는 이렇게 하는 것 아닌가요.”

 이런 대세를 법으로 막으면 어떻게 될까. 십중팔구 외부의 힘에 의해 규제가 뚫린다. 미국엔 트루카가 있다. 온라인으로 새 차까지 사고판다. 2009년 창업해 지난해 기업공개까지 했다. 시가총액만 약 1조원이다. 중국에도 무수한 온라인 중고차 플랫폼이 있다. 알리바바까지 뛰어들었다. 일본도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박 대표는 “결국 토종은 다 망하고 중국에 잠식당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억울하지 않으냐, 한마디 해보라. 쿡 찔러봤다. “지금은 참겠다”는 말이 돌아왔다. 당장의 분함과 답답함을 푸는 것보다 15명의 식구와 650명의 딜러가 그에겐 더 중요했다. 그래서 지금껏 인터뷰도 사양했다고 한다. 괜히 미안해졌다. 도움 될 일이 있을까. 주무 부서인 국토교통부는 뭘 하나 물어봤다. 그러잖아도 며칠 전 강호인 장관이 법을 재개정해 “헤이딜러가 폐업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법을 다시 고치는 게 다가 아니다. 규제의 틀을 새로 짜야 한다. 안 되는 것만 열거하고 나머지는 뭐든지 허용하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답이다. 미국 등 스타트업이 강한 나라는 다 그렇게 한다. 문제가 생기면 스타트업과 규제 당국이 서로 상의해 바꿔 나간다. 우버·에어비앤비 같은 데카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의 스타트업)이 그렇게 탄생했다. 우리는 여전히 되는 것 몇 개 빼면 다 안 되는 포지티브 시스템이 주류다. 강호인 장관은 “이런 걸 풀지 않으면 창조경제는 없다”고 했다. 나는 강호인 장관의 약속이 지켜지는지 끝까지 지켜볼 생각이다.

 대통령은 요즘 입만 열면 국회 탓, 야당 탓이다. 경제 살리는 법을 안 만들어줘서 경제가 더 어렵다고 한다. 길거리 서명운동에도 동참했다. 심정은 이해 못할 바 아니나, 새 법 만드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있다. 바로 이런 잘못된 법이 안 만들어지도록 하는 것이다. 아이가 나라의 미래라면 스타트업은 경제의 미래다. 한 유망 스타트업이 낡은 규제나 기득권 보호에 묶여 꺾이는 순간 수십·수백 젊은 창업가의 의지와 열정도 함께 꺾인다. 그래서야 창조경제가 될 턱이 없지 않은가.

이정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