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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둘지 않는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한국과 대만을 함께 돌아본 어느 세계은행관계자는 한국의 GNP가 잘못 평가된것이라는 의문을 제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모로 보나 한국이 대만보다 훨씬 잘 사느것 같은데 어째서 통계 숫자는 그반대냐는 것이다
사실 서울의 화려함이 타이페이에 비교할바 아니고 사업시찰을 다녀봐도 거창하 공장규모나 설비가 대만에 댈게 아니다. 강남의 대형아파트 단지도 타이페이에서는 찾아볼수 없다. 유행의 첨단을 따져도 우리가 단연 앞선다. 외국손님을 불러놓고 파티 한 번을 해도 우리 손이 훨씬크다.
그런데도 분명한것은 대만이 한국보다 넉넉하다는 것이다. 저들의 1인당 GNP는 3천달러를 넘어섰고 우리는 이제 겨우 2천달러에 턱걸이를 하고있다.
우리는 뒷 감당이 무서워서 부도를 못내는 부실대기업들이 잔뜩 널려 있지만 저들은 부실여부는 고사하고 모두들규모는 잔챙이지만 속은찬 중소기업들이 오늘의 대만경제를 살찌워 놓았다.
이처럼 외모와는 달리 내실면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역시 비교가 안될만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약이 오를 정도다. 저들은 국제수지 흑자를 줄이기 외해 통화긴축을 하고, 그래서 물가는 더 안정되고 그 결과 경쟁력이 더 강화되어서 수출이 늘고 다시 흑자가 늘어나는 과정을 되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일이 잘 풀리기 시작하면 이처럼 상승작용까지 가세하는 법이고 안되기 시작하면 악순환의 반복이라더니 과연 그짝이다.
물론 이같은 차이가 꼭 저들이 잘났고 우리가 못나서는 아니다. 우선 자연조건면에서 대만이 유리하다.
3모작까지하는 쌀농사로 한쪽에서는 심고 다른 한쪽에서는 거두니 전체생산량이 남아날뿐 아니라 우리처럼 단경기라고 값이 오르는 법은없다. 재고도 필요없다. 해저에 묻힌 천연가스로 취사연료를 1백% 자급하고 날씨가 춥지 않으니 난방비용도 걱정밖이다. 해외지점이 없어도 세계방방곡곡에서 뿌리를내린 화교들이 그이상의 구실을 해낸다.
어쨌든 대만경제는 유리한 여건을 잘 활용해서 이젠 저절로 굴러가게끔 숙성했다. 따라서 경제정책에 관한 한 무리를 할 필요가 없다. 때맞춰 거름주고 피만 뽑아주면 된다는 식이다.
우리보다 한발 앞선 수입자유화만해도 매우 자연스런과정을 거쳤다. 70년대부터 시작되 수입개방정책은 그때부터 무역수지가 적자를 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요즈음은 흑자가 점차 눈덩이처럼 불어남에 따라 수입자유화폭을 더 넓히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그래도 신중에 신중을 거듭하는것이 그들의 정책풍토다. 이론적으로는 아무리 옳아도 현실과 여건이 무르익을 때까지 서두르지않는다.
그러나 부자라고 고민이 없을수 없다. 사양화하고있는 섬유산업문제나 후발개도국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한 기술개발에 활로를 걸고 있는것은 우리와 다를바 없다.
특히 자동차·조선·철강등 중공업 분야와 첨단기술 등에서는 한국에 뒤져있다. 자동차의 경우 자국산 부품이 30%에 불과하다.
정부관계자 몇사람에게 이점을 물었더니『문제는 문제』라면서도 별로 심각해 하는 기색이 없다. 우리네 경제관료들 보다도 덜「의욕적」이어서일까.
경제부차장(차관)을 지내고 지금은 대만대학교총장인「첸·썬」(손진)박사에게 대만경제도 이젠 사업구조의 전환을 모색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전환의 필요성은 15년전부터 제기되어 왔으나 실제로 전환이라고 할만한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경제정책에 있어서 전환이라는것 자체가 적합치 않은 단어다. 경제란 시간을 두고두고 하나하나 쌓아 올라가는 하루아침에 바꿔좋을수있는게 아니지않는가』
그는 정책의 전환이라는 말자체를 부인했다. 과거는 축적된 결과지 청산의 대상이 아니라는 식이었다. 한국경제가 당면한 청산과 전환의 필요성을 그에게 참고삼아 설명해 주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들의 또하나 고민은 우리가 그처럼 부러워하는 바로 중소기업문재였다
「필립·왕」(왕각민)경제부중소기업처장은「최근들어 중소기업들이 자꾸 사업을 크게 벌이려하는 경향이있어 걱정이다. 정부입장에서는 중소기업의 무리한 사업확장을 경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억제대책이 있는가.
『분수에 넘치게 사업을 벌이다 실패한 사례를 들어서 설득하고 있다』
-그 실패사례에 한국기업의 케이스들도 등장하는가.
『가끔 거론된다』
그러나 내놓고 말은 안해도 대만경제의 진짜 고민은 기업들의 투자부진인듯 싶었다.
저축률은 30%가 넘는데 투자율은 20%가 안된다. 동원된 내자가 고질적으로 남아돌고 있는것이다.
지난 연말에 대만정부가 발표한 올해 경제운용계획의 골자도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는테 모든 초점을 맞춰놓은 것이었다. 기업들이 투자를해야 수입이 늘어 과도한국제수지흑자를 소화해 낼수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50억달러 상당의 14개 프로젝트를 정부사업으로 벌이는 한편 관세를 내려 수입촉진을 도모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형편을 생각하면 그들은 팔자에 겨운 고민을 하고 있다고나 할까.
일행 중의 한명이 명괘한 처방을 내렸다.
『조금도 걱정할것 없어요. 우리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할수있는 비효율과 비능율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의 절반만 고쳐도 한국경제가 대만경제를 따라잡는것은 식은죽 먹기 아닙니까』 【대북=이장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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