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폭발하면 후회, 참으면 화병…나를 위해 용서하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10면

기사 이미지

Q (다 내 잘못이라니 섭섭하다는 대학생) 20세 여성으로 이제 대학교 2학년이 됩니다. 부모님에 대한 분노 때문에 사연을 보냅니다. 부모님이 제 입장에서 생각하지 않고 저한테만 잘못이 있다고 하실 때 무척 섭섭합니다.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마음에 상처가 돼 버린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님과 싸우고 나면 감정 조절이 힘듭니다. 잊어버렸던 일까지 다시 떠오르면서 화가 주체가 안 됩니다. 그럴 때면 방에서 혼자 물건을 집어 던지는데, 그러고 나면 한순간은 좀 후련해지지만 결국 기분이 더 나빠집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알기에 그들로부터 받은 상처를 털어 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힘들다고 투정해도 받아주지 않는 부모님과 부딪히면 싸우게 되고 점점 감정 조절이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부모에게 자꾸 욱하는 20대

A (분노의 진짜 원인 돌아보라는 윤 교수) 솔직한 사연 감사드립니다. 부모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건 윤리적으로 옳지 않은 일입니다. 매우 강한 금기 사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분노 반응을 보이게 되면 죄책감이라는 후폭풍이 거세게 찾아오죠. 그런데 우리는 부모에게 섭섭하고 분노하기 쉽습니다. 부모에게 화나는 게 아주 예외적인 일이면 윤리 리스트에 올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도덕적 금기 사항이란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에 막아 놓은 것이죠. 형제·자매가 서로 싸우면 안 된다는 것도 싸울 수밖에 없기에 만들어진 가르침입니다.

왜 부모에게 분노하기 쉬울까요. 그만큼 자녀가 부모에게 의존적이고 기대가 크기 때문이죠. 분노는 상대방이 내 정체성에 상처를 입혔을 때 나를 지키기 위해 튀어나오는 감정 반응입니다. 오늘 사연처럼 부모가 내 편이 돼주지 않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한다고 느껴질 때 내 존재감이 약해지면서 분노 반응이 생기게 됩니다. 방에서 혼자 물건을 집어 던지면 후련해지지만 곧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분노라는 불편한 감정을 외부로 배출하니 후련하지만 곧 죄책감이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분노는 그 자체가 부정적인 감정은 아닙니다. 우리 생존에 중요한 감정 반응입니다. 내 생존에 위협이 느껴진다고 느낄 때 공격성을 일으키는 감정 신호이죠. 그러나 과도한 분노는 내 마음뿐 아니라 몸까지 상하게 하고 가족 관계를 포함한 사회적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오늘 사연은 관계의 문제인 듯하지만 더 핵심적인 것은 분노라는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조절하는가에 있죠. 분노가 생기지 않도록 모든 관계를 이상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실제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불편하게 튀어나오는 분노에 대해 도망만 갈 것이 아니라 마주 보고 어떤 녀석인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화를 누르는 것만으로는 해결 안 돼

분노 조절을 위해 우리가 주로 쓰는 방법은 억압, 즉 찍어 누르는 것입니다. 상사의 불합리한 언사에 화가 나지만, 화를 내면 직장 생활이 순탄치 않을 수 있어 억지웃음을 짓는 것이 한 예가 될 수 있겠죠. 찍어 누르는 억압은 화를 빠르게 조절한다는 점에서는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화가 빠른 감정 반응이라 조절에도 빠른 방법이 필요한 거죠. 그렇지만 억압은 분노가 밖으로 나가는 것을 막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분노 자체를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분노란 감정도 일종의 에너지죠. 그래서 나가는 것을 막게 되면 내 마음 어느 곳에 남아 있게 됩니다. 그래서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올 수 있죠.

특히 부모나 직장 상사처럼 화를 내는 것이 금기인 상대에게 분노가 쌓이게 되면 억압이 더 강하게 일어납니다. 결국 찍어 누르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어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장 분석 결과 나는 겨울에 새로운 상품을 선보이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했는데 상사가 가을에 더 빨리하자고 해서 어쩔 수 없이 가을에 상품을 론칭 했는데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상사가 왜 가을에 상품을 출시했느냐고 적반하장으로 나에게 화를 냅니다. 억울하죠. 이럴 때 분노 감정이 치밀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직장 상사는 분노 표현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대상이니 일단 이런 감정을 강하게 억압합니다. 그러나 내 맘에서 화가 꿈틀대니 언제 터질까 불안합니다. 이때 자기 합리화란 현상이 일어납니다. 계속 겨울이 적기라 생각하면 괴로우니 가을이 신상품이 선보이기에 좋은 계절이었는데 단지 운이 없어 실패했다는 식으로 내 생각을 조정해서 합리화하는 것이죠. 의식도 못하는 사이에 자동으로 이런 현상이 일어납니다. 억압보다 더 단단하게 분노가 나가는 것을 차단할 수 있지만 이 또한 화 자체를 해결할 순 없습니다. 마음 더 깊숙이 들어가 오히려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억압과 자기 합리화는 효과적인 방법이긴 하지만 결국은 분노를 내 마음 안쪽으로 밀어 넣는 방법이라 엉뚱한 곳에서 화 에너지가 화풀이처럼 터져 나올 수 있고 화병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 어떤 다른 방법들이 있을까요.

분노로 망가지는 건 결국 내 맘과 몸

대표적인 분노 조절 전략은 이완 요법입니다. 마음에서 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 몸의 생물학적 공격 반응을 이완하기 위해 깊은 심호흡을 한다거나 조용히 걸으며 즉각적인 분노 반응이 터져 나오는 것을 지연시키는 방법입니다. 그냥 찍어 누르는 것보단 좋지만 그래도 화를 나게 한 내용 자체가 지워지진 않습니다. 인지의 재구성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나에게 꼭 나쁜 뜻으로 한 이야기가 아닌데 내가 그것을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은 아닌가, 분노 감정을 일으킨 사고의 흐름과 인지 과정을 재구성해 보는 것이죠. 같은 단어라도 사람들은 다 다르게 해석하기에 분노 반응을 객관화하는 게 도움이 됩니다. 화가 나는데 일단 참고 하루를 지나다 보니 상대방이 이해가 되는 경험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문제 해결 전략도 있습니다. 분노라는 감정 반응을 일으킨 근원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분석하는 겁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되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에너지를 쏟는 것이죠. 원인이 없어지면 더 화낼 일도 없을 테니깐요. 난 드라마 봐야 하는데 스포츠 채널 보겠다고 우기는 남편과 다툼이 일어나니 TV를 하나 더 사는 것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적극성 기르기 훈련도 있습니다. 즉각적인 분노를 표현하지 하지 않고 상대방이 기분 나쁘지 않게 합리적으로 자기 의견을 전달하는 소통 기술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화가 나면 ‘너는 인간 자체가 나쁘다, 너희 집안은 왜 그러냐’며 분노 섞인 말을 하게 되는데 그러지 말고 구체적인 불만 사항에 관해 이야기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너는 다 좋은데 이 부분이 좀 그래’ 식으로요. 적어서 소통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이렇게 여러 방법이 있다는 건 그만큼 조절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겠죠. ‘나를 위한 용서’라는 분노 조절 방법도 있습니다. 보통 용서는 타인을 향한 것인데 그게 아니라 나를 위해 용서를 하자는 것이죠. 타인 때문에 분노하면 결국 망가지는 것은 내 마음과 몸인데 그러면서도 용서를 못하는 것은 상대방이 너무 밉기 때문입니다. 그때 생각의 전환을 하자는 것이죠. 상대방을 진짜 용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용서하기로 하는 겁니다. 상대방에게 용서했다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분노의 내용과 그것에 따른 분노란 감정 반응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분노란 감정이 생길 때 적극적으로 그 감정을 처리하고 더 긍정적인 가치에 내 시간을 투자하는 겁니다.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용서하기로 결정하면 그에 따른 감정 반응이 줄어드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작심삼일 두려워 계획 못 세운다는 30대
아내는 리모컨을 던지고, 아들은 방에서 안 나와요
자유·사랑·힘 중 뭐에 제일 끌리세요

▶강남통신 기사를 더 보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