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 대책 외치는 정부 … ‘기형아 고통’에는 무관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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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호 6 면

14일 오전 11시30분 서울시내 한 대학병원 산부인과 병동의 신생아 중환자실 입구. 20여 명의 ‘엄마’ ‘아빠’ 표찰을 단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잠시 후 스크린도어가 열리자 엄마·아빠들은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중환자실엔 30명 가까운 신생아가 있었다. 5명은 심각한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앞두고 있었고 23명은 미숙아였다. 미숙아 중 14명은 몸무게가 1㎏도 안 되는 초극소 미숙아였다. 인큐베이터 속 아기들을 살펴본 부모들은 낮 12시쯤 하나둘 무거운 발걸음으로 중환자실 밖으로 나왔다. 중환자실을 담당하는 선임 간호사는 “미숙아와 선천성 이상아가 계속 늘고 있어 중환자실이 이미 포화 상태”라고 말했다.


이 병원 산부인과에서 만난 30대 후반의 임신부는 “둘째를 임신했는데 심실이 하나뿐인 태아 심장질환을 확인했다”며 “출산 여부를 고민했으나 태어난 뒤 3단계에 걸쳐 수술하면 살릴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출산하기로 결정하고 진료를 계속 받고 있다”고 말했다.


선천성 이상아나 기형아 출산이 가족들 마음에 큰 고통을 주고 경제적으로도 부담을 주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저출산 대책을 외치는 정부는 출산을 장려할 뿐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는 소홀하다. 무엇보다 기형아 출산은 10년 전부터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도 체계적인 통계조차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심장 관련 기형이 가장 많아10년 전인 2005~2006년 데이터로 분석한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2009년) 조사에서는 선천성 이상아 발생률이 2.7~3.1%로 분석됐다. 외국보다 특별히 높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에도 서울대병원이나 서울아산병원 등 개별 병원에서 나오는 수치는 이보다 훨씬 높아 6~10%나 됐다. 보건복지부는 2009년 이후 전국적인 실태조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건강보험관리공단 자료를 단순 집계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전국 단위 상세 조사로는 가장 최근에 이뤄진 서울대 의대 환경보건센터의 조사도 복지부가 아닌 환경부 예산으로 진행됐다. 건강보험공단 자료를 바탕으로 개별 기형 질환까지 분석한 이 조사보고서를 보면, 선천성 기형 중에 가장 많은 것이 심방중격 결손증이나 심실중격 결손증 같은 심장과 관련된 것이었다. 2011년 기준으로 신생아 1만 명당 141.5명이 발생한 심방중격 결손증은 좌우 심방 사이 중간벽에 결손(구멍)이, 1만 명당 61.1명이 발생한 심신중격 결손증은 좌우 심실 사이 중간벽에 결손이 생긴 것이다.


세계 각국은 전국 혹은 지역별로 꾸준히 데이터를 수집하고 있고 국제 선천성 이상 감시기구(ICBDSR)에서는 이를 모아 매년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일본은 각종 질환별로 197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최장 40년 동안 자료를 갖고 있다. 미국도 캘리포니아나 텍사스 등 주·카운티별로 자료를 발표하고 있다.


서울 강남성모병원 신종철(산부인과) 교수는 “2004~2008년 식품의약품안전청 의뢰로 선천성 기형 모니터링 체계 구축 연구를 진행했으나 참여 기관 수도 적어 대표성 있는 결과를 내놓기 어려웠다”며 “국가 차원에서 정확한 정보 수집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선천성 이상아 발생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원인에 대해 전문가들은 산전·산후 정확한 진단의 확대도 있지만 무엇보다 산모의 고령화를 지적한다. 특히 산모의 고령화와 그에 따른 난임 증가는 난임치료를 통한 다태아 출산 증가로 이어지고, 다태아 출산은 미숙아의 증가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35세 이상 고령 산모는 2004년 전체 산모의 9.4%였다. 이후 해마다 증가해 2012년에는 20.2%에 이르렀다. 다태아로 태어난 신생아는 2004년 9880명에서 2013년 1만4372명으로 증가했다. 난임 치료를 전문으로 하는 서울 강남차병원에서는 산모 다태아 출산율이 90%에 달한다. 강남차병원 전지현(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다태아는 정해진 자궁 속에서 여러 생명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조산율이 굉장히 높다”며 “삼둥이들의 경우 체중 1.5㎏ 이하의 극소 미숙아가 많다”고 말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국내 미숙아 출산은 2010년 1만8219명에서 2014년 2만3602명으로 4년 사이 29.5%나 늘었다. 전체 신생아 숫자가 47만200명에서 43만5400명으로 7.4% 줄었는데도 미숙아는 오히려 증가한 것이다.


사회적 환경과 생활환경도 선천성 이상아 출산율을 높이는 요인이다. 서울대 환경보건센터 홍윤철 교수는 “선천성 기형 유병률은 가구의 소득이나 가구 구성, 실업률 증가와도 관련 있다”며 “경제 사정이 좋지 않으면 건강에 해로운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될 수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지금 같은 저출산 시기에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상아로 태어나더라도 치료 기술이 발전하면서 아기를 살릴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질환의 종류도 다양하기 때문에 비교적 간단한 치료로 완치할 수 있는 경우가 있고, 여러 번 수술을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서울아산병원에 따르면 선천성 이상아(기형아) 사망률은 지난 10년간 11%에서 8%로 줄었다. 하지만 기형 진단을 받으면 인공임신중절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다. 대표적인 사례가 다운증후군이다.


서울대 환경보건센터 조사에서 다운증후군을 갖고 태어난 신생아는 2008~2011년 사이 1만 명당 3.4~4.3명을 유지했다. 외국의 경우 대체로 1만 명당 10~20명인 것보다 눈에 띄게 낮았다. 단국대 제일병원 한정열(산부인과) 교수는 “미국 같은 경우 다운증후군 아이를 출산하지만 우리는 산전에 확인되면 대부분 중절한다. 큰 병원은 안 하지만 작은 병원은 암암리에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위험군인 임산부들에게 정확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병을 키우는 경우도 있다. 한정열 교수는 “당뇨·천식·고혈압을 앓고 있는 산모의 경우 정확한 정보로 치료를 받으면 위험성을 훨씬 낮출 수 있다”며 “태아를 걱정한다며 제대로 치료받지 않는 것이 더 위험하다”고 말했다. 특히 “약물과 환경적인 요인에 따른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선 임신 최소 3개월 전부터 준비해 계획 임신을 해야 한다”고 한 교수는 설명했다.

산모·영유아·청소년 질병 22년 추적 조사한편 환경부는 지난해부터 2036년까지 총 22년간 산모와 영·유아, 청소년을 추적하는 ‘어린이 환경보건 출생 코호트(Cohort)’ 연구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코호트 연구는 동일한 특징이나 행동양식을 공유하는 집단을 대상으로 특정 질병 원인에 대한 노출 여부에 따른 질병 발생률을 비교하는 역학적 연구다. 산모 6만5000명을 상세 연구하기 위해 상세 코호트에 5000명의 산모를 모집한 뒤 산모, 영·유아기 때부터 청소년기까지 성장 단계별로 추적 조사한다. 연구를 맡은 이화여대 하은희 예방의학과 교수는 “이번 연구를 통해 임신과 출산 등 성장 단계별 건강보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상아 출산은 부모에게 경제적 부담도 지운다. 서울 강남성모병원 이철(소아심장과) 교수는 “태아의 심장 이상이 확인되면 막대한 비용에 대한 고민으로 출산의 부담을 느끼는 부부가 많아 의료진이 협진을 통해 설득하는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에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부모가 지원받을 수 있는 재단까지 연결해주기도 한다.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을 개별 병원들이 나눠 하고 있는 셈이다.


2011년 기준으로 선천성 이상아 질환군의 개인 의료비는 총 2164억원으로 전체 진료비 대비 비급여 본인부담률이 30.2%였다. 미숙아 등 신생아 치료수요는 계속 증가하고 있지만 치료 시설은 부족하다. 또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아 비급여가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복지부가 1200억~1400억원 규모의 예산을 마련해 매년 89만여 명의 영·유아가 혜택을 받도록 하겠다고 발표했지만 2018년에나 실현된다. 게다가 미숙아와 선천성 이상아의 의료비 지원 예산은 올해도 113억원으로 제자리걸음이다.


복지부 이동욱 인구정책실장은 “미숙아와 선천성 이상아의 의료비 중 자비로 부담해야 하는 치료가 많다”며 “절박한 상황에 대한 지원 사업인 만큼 예산 확보에 노력하고 있고 지난해 지연된 지원금도 3월 이내에 해결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설명했다.


오이석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oh.i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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