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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아주기와 같이 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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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기자 중앙일보 중앙SUNDAY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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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신홍
사회부문 차장

“스트~라이크!”

 올해 중2 올라가는 아들이 유치원에 다닐 때니 8년 전쯤, 우리 집 거실은 시도 때도 없이 야구장으로 변했다. 야구에 푹 빠진 아들이 틈만 나면 “야구 하자”며 졸라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실내 가재도구를 마냥 망가뜨릴 순 없는 노릇. 머리를 싸매던 우리는 종이를 꼬깃꼬깃 접어 야구공과 방망이를 특수 제작했다.

 몇 차례 시행착오 끝에 집안은 그럴싸한 야구장으로 탈바꿈했다. 아들이 던진 종이 공이 포수인 아빠 손에 제대로 꽂히면 이내 심판으로 변신한 아빠의 “스트~라이크” 콜이 이어졌다. 아빠가 타자로 나설 때면 지나가던 엄마가 포수로 찬조 출연도 했다. 물론 아들네 팀 선수다.

 엄마와 아빠는 늘 곁에 있는 놀이친구였다. 친구의 조건은 단 하나. ‘놀아주는’ 존재가 아니라 ‘같이 노는’ 사이가 되는 것이었다. 부모가 ‘어쩔 수 없이 너랑 놀아준다’고 생각하는 한 아이와 친구가 되긴 힘들다. 아이들은 직감적으로 느낀다. 그러는 부모만 힘들 뿐이다. 그냥 같이 놀며 즐기는 게 최선이다.

 이렇게 생각이 바뀐 건 그 무렵 어느 지인의 경험담을 듣고서였다. 그는 아이랑 놀아주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같이 놀기로 마음먹은 뒤 가족 분위기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소상히 설명했다. 핵심은 자녀와는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라는 점이다. 시혜를 베푸는 대상은 더더욱 될 수 없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물도, 상하 관계도 아니기 때문이다. 얘기 들어주기 대신 같이 대화하기, 웃어주기 대신 같이 기뻐하기도 그런 이치다. 애 봐주기나 학원 한번 데려다 주기 등 ‘해준다’는 생각은 금물이다.

 세계적인 연주자로 성장한 장영주가 어릴 적 화장지를 쏙쏙 뽑으며 놀 때였다. 그래도 부모는 꾸중 대신 곁에서 묵묵히 지켜만 봤고, 두 통 넘게 뽑기 놀이를 하던 장영주는 더 이상 화장지에 눈길을 주지 않았다고 한다.

 장영주의 부친 장민수씨는 딸의 교육 과정을 담은 책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의 아름다운 질주』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녀에게 ‘안 된다’는 말은 하지 마라. 아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라.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할 땐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자녀를 동등한 인격체로 받아들이고 꾸준히 눈높이를 맞춰갈 때 긍정적인 관계는 지속될 수 있다.

 최근 저출산이 화두다. 지난해 말 현재 한국의 인구는 5061만 명이다. 이대로 가면 2030년 5216만 명에서 정점을 찍은 뒤 감소하기 시작한다. 출산율은 1.21명으로 초(超)저출산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주거·취업·육아 문제가 주된 원인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저출산 대책이 진정 효과를 보려면 가정부터 정상화될 필요가 있다. 최근의 가정 파괴를 핵가족에 빗대 ‘헬가족’이란 단어까지 등장하는 마당에 가정이 바로 서야 출산도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예부터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하지 않았나. 그러려면 이제라도 같이 놀기부터 시도해볼 일이다.

박신홍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