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노트북을 열며

1억원을 주면 아이를 낳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기사 이미지

김원배
경제부문 차장

“대체 얼마를 주면 애를 낳을까요?”

도발적 물음이었다. 지난해 세종시에서 들었던 한 강의에서 강사가 꺼낸 질문이다. 중앙부처 남성 공무원이 대부분이었던 참석자 중 몇몇이 낮은 목소리로 “1억원”이라고 대답했다. 강의 주제가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여야 한다는 내용이라 액수와 관련한 더 이상의 토론은 없었다.

 하지만 궁금했다. 올해 초 가까운 친척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대답은 이랬다. “1억원쯤 받으면 집을 마련하는 데 보태든지, 알아서 잘 쓸 수 있지 않을까.” 일부 지자체에서 셋째 이상을 낳을 때 주는 장려금에 ‘0’이 하나 더 붙었다. 호기심이 생겨 1억원을 매달 나눠서 받으면 어떻겠느냐고 물었더니 “그럼 낳지 않겠다”는 답이 돌아왔다. 심사숙고한 답변은 아니었다. 여기서 ‘1억원’은 막연히 큰 경제적 이익으로 해석하면 무리가 없겠다. 2012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자녀 한 명의 총 양육비(출생~대학 졸업)가 3억896만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다른 대답이 나왔을지 모른다.

 실현 가능성은 있을까. 물론 현재 나라 살림으론 불가능하다. 2014년 신생아 수는 43만5400명. 1인당 1억원씩 주려면 43조원이 필요하다. ‘1억원’을 직접 줄 수 없다면 양육 비용을 낮추는 수밖에 없다. 줄이지 못한다면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라도 멈추도록 해야 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3년 조사한 자녀 1인당 총 양육비는 1억9702만원이었는데 불과 9년 만에 3억원을 넘었다. 비싼 교육비 등으로 인해 고비용 양육 구조가 굳어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든다.

 이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제도적 해결책이 필요하다. 인구학을 전공한 KDI국제정책대학원 최슬기 교수는 “노동 시간을 줄여 부모가 직접 아이를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12일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한 양향자 전 삼성전자 상무가 지적한 “여성의 출산이 출세를 막고 있는 현실”도 개선해야 한다. 나아가 내 아이가 ‘흙수저’로 태어나도 성실히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줘야 한다.

 올해를 정점으로 내년부터 15~64세의 생산가능인구가 준다. 절대인구가 감소하는 것도 시간문제다. 드라마 ‘응답하라1988’의 주인공인 성덕선과 친구들(당시 고2·1971년생)은 102만 명이나 태어났다. 역대 최고다. 그러나 2002년 이후 신생아 수는 40만 명대에 머물러 있다. 정부가 그동안 다양한 저출산 대책을 내놨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사실 누가 낳아주면 좋지만 꼭 내가 낳아야 할 이유는 없다, 이런 생각이 만연하면 그 사회는 파국을 맞는다. 출산율은 한국 사회의 건강성이 축약된 희망 지표다. 출산율이 오르기 위해선 출산을 가로막고 있는 여러 가지 모순과 폐습을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젠 출산율을 경제성장률만큼 중요한 관리 지표로 삼을 때다.

김원배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