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가이드 ① 보드게임 - 김건희 한국보드게임개발자모임 대표 인터뷰] 공주 구출? 부자 되기?…주제 정한 뒤 게임 규칙 만드세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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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나 주사위를 사용해 상대와 승부를 겨루거나 협동하며 목표를 달성하는 보드게임은 어떻게 만들어질까요. 화면 속에서만 대화를 할 수 있는 컴퓨터 온라인 게임과는 달리 상대의 눈을 마주 보며 할 수 있어 더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게 만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게임판·말·카드·주사위 등 도구 사용해
상대와 마주 앉아 즐기는 보드게임
플레이어가 재미 느낀다면
무한한 형태로 구상할 수 있어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는 않아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오랜 시간 테스트를 할 수 있는 인내심만 있으면 되죠. 소중 학생기자들이 보드게임 제작 과정을 살펴봤습니다.

게임판·말·카드·주사위 등의 도구를 사용해 상대와 마주 앉아 즐기는 보드게임은 온라인 게임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형태를 갖출 수 있습니다. 독일 등 외국에서는 ‘Table top game’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탁자 위에서 즐기는 게임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요. 특정 장소에 가지 않아도 게임 물품만 있다면 어디서든 할 수 있죠. 방학 동안 방에서 즐기기엔 제격입니다.

기존에 판매되는 보드게임을 하는 것도 좋겠지만, 제작 원리만 알면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보드게임의 장점입니다. 넓은 의미로는 ‘가위 바위 보’와 같은 놀이 역시 보드게임에 속할 정도니까요. ‘보드게임은 반드시 이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정해진 법칙이 없기 때문에 제작자 마음대로 게임의 규칙을 구성할 수 있는 것이죠. 단, 재미있어야 합니다. 원하는 대로 게임을 만드는 것은 좋지만, 즐기는 사람이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안되니까요.

엄청난 몰입도와 중독성을 가진 온라인 게임처럼 보드게임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래도 나름의 요소를 갖추는 편이 좋습니다. 지난 5일, 소중 학생기자들이 보드게임의 제작 과정을 살펴보기 위해 경기도 의정부시에 위치한 한 사무실을 찾았습니다. 김건희 한국보드게임개발자모임(KBDA) 대표가 학생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죠. 김 대표가 만든 보드게임으로 가득한 사무실 풍경에 학생기자들의 눈이 초롱초롱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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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대표(왼쪽)가 ‘Rising-5’ 보드게임의 초기 버전을 컴퓨터로 보여주며 제작 과정을 설명했다.

보드게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느 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고 말하는 발명가들이 있습니다. 주변에서는 이들을 천재라고 부르지만, 사실은 많은 노력들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죠. 보드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어느 순간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3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바탕이 되는 지식, 지식을 현실화 할 수 있는 주변 환경, 새로운 것을 만들겠다는 의지입니다. SF영화나 고전소설을 자주 접하며 게임의 배경이 될 지식을 쌓고, 이를 종이에 옮겨 적거나 그려볼 수 있는 환경을 뜻하죠. 재미있는 보드게임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보드게임을 만들 때 필요한 구성 요소는 뭘까요.
“게임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규칙이 있어야 합니다. 주사위를 굴려 말을 전진시키거나, 카드를 내서 상대가 가진 카드를 뺏는 등의 규칙입니다. 또 게임의 바탕을 이루는 주제와 스토리가 있어야 하죠. 악당으로부터 공주를 구출한다거나, 돈을 모아 부자가 되는 것 등입니다. 게임을 흥미롭게 하는 그림과, 카드·주사위·말판과 같은 물품들도 중요한 구성 요소죠.”
다양한 게임 속 상황(이벤트)을 만들 때 팁이 있다면.
“테스트를 반복하면 상황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드게임을 만들 때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하는 과정이 바로 테스트인데요. 테스트란 게임을 만든 후 이를 다른 사람들(사용자)이 직접 해보며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때 ‘이런 부분은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와 같은 건의사항이 들어올 수 있어요. 개발자가 만든 상황과 사용자가 원하는 상황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죠. 재미있는 상황은 주로 테스트를 통해 얻어지게 됩니다.”
개발을 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은.
“솔직히 다 어려워요(웃음). 그중에서도 역시 만들어진 게임을 테스트하고 수정하는 과정이 가장 지루하고 어렵습니다. 처음 게임을 만들 때는 제가 만든 게임 속 상황이 제일 재미있어 보이지만, 막상 사용자들이 할 때 재미없어 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사용자들의 건의사항을 반영하려면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일도 있어요. 힘들지만 재미있는 게임을 만든다는 생각에 보람을 느끼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드게임이 출시돼 사람들이 재미있게 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언제부터 보드게임을 만드셨나요.
“전 초등학생 때부터 보드게임을 즐겼어요. 당시에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보드게임을 국내에서 따라 만든 ‘해적판’ 보드게임이 유행했죠. 학교 앞 문구점에서 1000원에 판매되는 해적판 보드게임의 종류만 300개가 넘었는데, 전부 해봤어요. 매일 문구점에 가서 새로 나온 보드게임이 있는지 찾아보고 구입해서 즐겼죠. 중학교 진학 이후에는 공부를 하느라 하지 못했는데, 대학교에 간 뒤로 보드게임방이 생긴 덕분에 다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어요. 어른이 된 후 다시 접한 보드게임이 너무 재미있어 직접 만드는 것에도 도전했죠.”
보드게임을 재미있게 즐기는 비법이 있나요.
“어떤 종류의 보드게임을 좋아하는지 자신의 취향을 찾아야 합니다. 사람에 따라 취향이 다르기 때문이죠. 여러 게임을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알 수 있어요. 요즘엔 마트에서 젠가·할리갈리 등의 보드게임을 판매하는데 종류가 한정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인터넷을 뒤져서라도 다양한 보드게임을 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숫자를 사용하는 것, 글자를 쓰는 것, 추리하는 것 등 게임 방식이 다양하니까요. 또 처음 보드게임을 접한다면 어려운 규칙을 가진 게임보다는 쉬운 게임을 추천합니다. 가족들과 함께 즐기는 것도 괜찮아요. 보통 어른들이 보드게임을 어려워 하시는데, 게임이 쉬울수록 같이 하기에 좋습니다.”
모바일이나 PC로 즐기는 게임과 기존 보드게임의 차이가 있다면요.
“사용자에게 안겨주는 재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모바일·PC 게임은 주로 몰입감을 높여주죠. 진화나 학습, 성장 등의 요소를 통해 오랜 시간 지루하지 않게 게임에 빠지게 해줍니다. 보드게임은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눈을 마주 보고, 함께 웃으며 하는 인간적인 게임이죠. 저마다의 장점이 있어서 어느 것이 더 낫다고는 할 수 없어요. 요즘엔 모바일 기기를 사용해 보드게임을 할 수 있는 제품도 출시되고 있어요. 어떤 게임이든 재미있게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김건희 한국보드게임개발자모임(KBDA) 대표는 연세대 생활디자인과 졸업. 2003년부터 보드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현재까지 약 40여종의 보드게임 및 교육게임을 개발했으며, ‘토끼와거북이’, ‘아브라카왓’, ‘피겨그랑프리’ 등의 보드게임으로 미국 오리진어워드·프랑스 칸느 게임어워드 등의 대회에서 수상한 바 있다. 현재 게리킴게임즈와 한국보드게임개발자모임 대표로 재직 중이며 저서로는 ?보드게임 한 판 어때?가 있다.

글=김록환 기자 rokany@joongang.co.kr, 사진=우상조 기자 woo.sangjo@joongang.co.kr, 동행취재=이다연(고양 풍산초 5)·이명준(고양 백마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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