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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일자리부터 허드렛일까지 생기는 서비스 산업이 살 길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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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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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증현(70)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관료 퇴임 후 한국 경제의 현안 진단과 구조개혁 과제 제시에 자신의 모든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현재 서울 여의도에서 윤경제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한국 경제는 안팎으로 혼돈과 불확실성에 휩싸여 있다. 경제의 성장동력인 기업 경쟁력은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고 경기부양 카드가 된 부동산시장은 공급 과잉 경고등이 켜졌다. 가계와 국가는 무거운 부채에 눌려 돈을 쓰기 어려운 처지다. 올해부터 금리 인상이 고개를 들 수 있다. 예고된 위기라고는 하지만 국회와 정부의 안이한 대응은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관료로 재직할 때 거듭 경제위기를 두 차례나 경험했던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의 쓴소리가 와닿는 이유다. 그에게 한국호가 새해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들어봤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 대외 여건부터 진단해 보자.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은 지난해 거의 20% 줄었다. 올해도 수출 환경이 개선되기 어려워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이 지났지만 회복세를 보이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 유럽이나 중국, 일본 경제는 아직 문제가 많다. 증시 불안도 극심하다. 최근 한국의 중요한 수출시장이 되고 있는 러시아·인도·브라질·인도네시아도 사정이 좋지 않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올해도 우리 경제의 제일 큰 축인 수출이 어려울 것이라 예상할 수밖에 없다.”
-내수 쪽도 상황이 나쁘다. 지난해 물가상승률이 0.7%에 그쳤다.
“수출이 부진하면 내수라도 경제를 보완해 줘야 하는데 올해도 희망적인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내수는 투자와 소비로 이루어지고, 투자의 주체는 결국 기업인데 정치·사회·문화·교육·노동환경 등 경제를 둘러싼 주변 환경이 개선될 것 같지 않아서다. 올해부터 내후년까지 총선·대선·지방선거가 줄줄이 있으니 정치권에서 동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소비의 중심축인 가계의 부채는 1200조원에 달한다. 이런 상황에서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길 기대할 수 없다. 각 경제 주체들이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된다.”
-공급 과잉 논란이 있는 부동산 문제는 어떻게 보는가.
“부동산은 언제나 한국 경제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국토는 좁고 인구가 많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부동산 분야와 관련해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200만 명이 넘는다. 2008년 후반기부터 완전히 죽어 있던 부동산 시장이 살아나면서 지난해 부동산 거래 건수가 110만 건을 넘어섰다. 기억할 것은 2008년에는 미분양 가구가 16만8000가구였다는 거다. 지난해엔 4만8000가구였다. 2008년에 비해 30%밖에 안 된다. 내용을 봐도 2008년에는 85㎡ 초과 중·대형이 절반이었지만 지금은 중·소형이 80%다. 신규 분양도 지난해 40만 호를 넘어섰는데, 내년엔 30만 호 수준으로 조정될 것이다. 부동산에 대한 근거 없는 낙관도 지나친 비관도 시장의 질서를 어지럽힌다. 균형 있는 전망이 필요하다.”
-전·월세 값은 계속 오를 텐데.
“월세는 세계적인 추세다. 이에 대처하려면 장기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 여기에 더해 수요·공급을 일치시킬 수 있도록 모기지(주택담보대출)도 발달시켜야 한다. 주택은 소유가 아니라 주거공간이라는 인식의 확산도 필요하다. 그것이 선진국 시민이 살아가는 하우징 라이프(주거 생활) 모델이다. 전세는 앞으로도 오를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이 상승한다는 기대를 안 하기 때문에 전세로 가는 거다. 그래서 양질의 장기임대주택을 확대하라는 얘기다.”
- 가계부채는 위험 수위에 이른 것 아닌가.
“가계부채는 숙명적으로 안고 가야 할 문제가 됐다. 하지만 관리가 가능하다고 본다. 제일 큰 이유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이 있다는 점이다. 일본은 이런 장치가 없어서 부동산 가격의 130~150%까지 대출해줬다가 집값이 절반 이하로 떨어지면서 부실채권이 된 거다. 이에 비해 우리는 50~60% 수준에서 억제돼 있다. 그러나 가계부채는 소비 여력을 잠식한다. 정부는 가계가 부채를 상환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창출하고 경제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장기 모기지 시장 발전도 도움이 된다.”
-청년실업은 어떻게 풀어 나가야 할까.
“오죽하면 청년들 사이에서 ‘헬 조선’이란 이야기까지 나오겠나. 학업을 마치고 직업을 못 찾아 방황하는 모습은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 교육 구조의 문제가 크다. 다른 나라의 사례를 보면 대졸자 비율이 30~50%에 그치지만 우리는 70%를 넘는다. 시간이 걸려도 이런 교육 구조를 고쳐야 한다. (산업 측면에서는 어떤가) 투자환경이 나쁘니까 자동차·반도체·전자를 비롯해 국내 기업의 공장이 줄줄이 해외에 나가고 있다. 일자리가 밖으로 나가는 거다. 결국 고용의 주체인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나.
“우리 경제는 세계적인 공급 과잉과 수요 부족의 시대를 겪고 있다. 조선 3사가 지금 7조원에 달하는 적자를 안고 있고, 해운·철강·자동차 모두 어렵다. 외국에선 구조조정이 한창이다. 우리도 기업활력제고법·구조조정촉진법 등을 국회에서 이른 시일 내 처리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의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지원하는 인프라가 구축될 수 있다.”
- 그런 인식이 있는데도 안 되는 건 왜인가.
“국회가 발목을 잡아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국회선진화법의 부정적 측면도 문제다. 책임 있는 집권 여당의 역할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런 부분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왕성한 기업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고, 투자가 안 되면 일자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가 난관에 봉착할 수밖에 없다.”
-정부와 공무원은 무얼 하고 있나.
“우리는 제대로 된 선진국도 아니고 중진국 트랩(trap·덫)에 갇혀 있으니 아직은 정부의 역할이 남아 있다. 공공 인프라와 법과 제도로 민간을 뒷받침하는 역할이다. 그러나 주변 여건이 공무원을 복지부동 하도록 만든다. 국회는 서울에 있는데 행정부를 세종시에 갖다 놓으니 공무원이 거기에 앉아 어떻게 행정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겠나. 왕복에 하루가 걸리는 세종시는 갈수록 외딴섬이 된다. 공무원의 퀄리티와 일의 생산성이 떨어지고 책임감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모든 걸 국회가 만든 거 아닌가. 발목 잡는 19대 국회의원 전원을 낙방시키고 일할 사람으로 새로 뽑아야 하는 이유다.”
-기획재정부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못하고 있다.
“경제부총리 역량을 가진 사람을 임명해야 하는 것이 인사권자의 첫째 책임이다. 둘째는 부총리와 상의해 경제팀을 짜줘야 한다. 부총리와 전혀 생각이 다른 장관이 있으면 팀워크가 되겠나. 경제정책은 상충되는 변수끼리 부딪히는 걸 조정하는 과정인데 팀 플레이가 안 되면 배가 산으로 간다. 부총리한테 책임을 다 주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내수가 활성화할 수 있을까.
“서비스산업에 사활이 걸려 있다. 그래서 서비스산업기본법이 나온 건데 국회가 뒷다리를 잡아 통과를 못 시키고 있다. 의료 부분을 빼라 뭐 이런 얘기를 한단 말이다. 의료·관광·교육·소프트웨어 콘텐트 분야는 결국 사람이 해야 하기 때문에 고용 친화적이다. 예컨대 메디컬 케어 쪽에 의료 분야가 제대로 산업화되면 이에 따른 의료기계 생산부터 헬스케어·검진까지 일자리의 보고(寶庫)가 된다. 그래서 대형병원이 하나 더 설립되면 1000명에서 1만 명까지 최고 고급 일자리부터 밑에 허드렛일까지 생기게 된다.”
-교육 분야도 그럴 가능성이 있나.
“교육시장을 개방해 해외의 보딩스쿨까지 들어오면 거기서는 자본화의 핵심 인력만 들어온다. 나머지는 결국 우리 국내의 로컬 분야에서 들어올 수밖에 없다. 관광도 마찬가지다. 관광은 고부가가치 산업인데 볼거리·먹을거리가 있어야 된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자원이라곤 국토의 70%를 차지하는 산밖에 없다. 케이블카는 아직도 환경단체 때문에 적극적으로 못하고 있다. 이런 부분에서 과감하게 규제를 혁파해서 자본이 진입할 수 있는 길을 터줘야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거다. 이 또한 국회가 뒷받침을 안 해주고 있으니 잘 될 리 없다.”
-미국 금리 인상의 충격은 흡수할 수 있을까.
“미국이 계속 금리를 인상하면 국내에 투하됐던 해외 자금이 상당 수준 밖으로 빠져나갈 수 있지만 이미 시장에 많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것은 중국발 세계 증시 불안처럼 세계 경제가 순항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미국은 느린 속도로 조금씩 금리를 올릴 거라고 예상한다. 다만 우리 경제가 세계 경제를 떠나서 생각할 수는 없다. 만약 해외에서 금리가 계속해 올라가면 우리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
-누리과정 예산 파동이 심각하다. 복지는 어떻게 해야 하나.
“복지 수준은 늘려 가야 한다. 그런데 재원은 어디서 조달할 건가. 증세를 하지 않으려면 재정의 건전성과 복지 수준의 확충을 절충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선 선별적·단계적 복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재정 수준을 넘어가는 전면적 무상보육은 지속될 수 없다. 선거에서 이를 주장하는 사람은 국민이 끌어내야 한다. 복지는 자활의지를 북돋아줌으로써 스스로 설 수 있는 생산적 복지를 해야 한다. 맞춤형으로 필요한 사람한테 필요한 만큼 해줘야 지속 가능한 복지가 가능하다.”
-4대 개혁도 지지부진하다.
“노동·금융·교육·공공 가운데 어느 하나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정부가 어떤 개혁을 하겠다거나 정책을 제시할 땐 목표가 정확해야 하는데 타게팅(목표 조준)에서 실패하고 있다. 예를 들면 공공부문은 공무원 연금 개혁과 공공기관의 임금피크제 외에는 무엇을 개혁하자는 건지 방향이 없다. 교육은 국정교과서로 요란스러웠을 뿐이다. 개혁하려면 타기팅이 분명하고 전략 전술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4대 개혁은 아무것도 안 보인다. 전문성을 가진 행정부가 건전한 재량을 많이 가지고 상황에 맞춰 즉각 움직여야 하는데 국회에서 발목을 잡으니 타이밍 좋게 일을 처리할 수 없다. 노동법 역시 이해관계자에게 맡겨놓으니 한 걸음도 못 나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총체적인 개조가 필요하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실기한 것 아닌가.
“우리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많이 늦었다. 처음부터 가입했어야 했다. 이제라도 가입을 서둘러야 한다. 양자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가 세계에서 톱이 될 정도다. TPP의 중심은 미국과 일본이다. 우리는 미국과 FTA를 하고 있어도 TPP에 가입한 다른 나라와의 관계를 어떻게 할 건가. 예를 들면 원산지 표시 같은 게 장벽이 된다. 중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 사이에서 눈치만 볼 게 아니라 국익을 위한 선택을 해야 한다.”

[김동호의 직격 인터뷰] 한국경제 총체적 개조론 펴는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글=김동호 논설위원
사진=김상선 기자

윤증현은 …
1997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실장을 맡던 중 외환위기를 경험한 뒤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나가 국제 감각을 익혔다. 이후 국내에 돌아와 금융감독원장을 맡았다. 이명박 정부에서 세계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초 기획재정부 장관을 맡아 경제위기 관리를 주도했다. 경상남도 마산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에서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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