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이의 정, 연결의 힘 덕분에 부활한 영철버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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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대표가 자신이 직접 만든 햄버거가 앞에 놓인 주방 앞에 활짝 웃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5일 오전 8시 30분, 이영철(48) 대표는 돼지고기와 양배추·청양고추 등 다진 채소를 철판에 볶기 시작했다. 2층에 위치한 33㎥(약 10평) 규모의 매장은 다음날로 예정된 개업식을 앞두고 실내 인테리어 마무리 작업이 계속됐다. 매장 한 켠에 있는 게시판에는 고객들이 붙여놓은 메모지들이 눈에 띄었다. “신입생 때부터 단골입니다, 힘내세요.”,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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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던 서울 안암동 고대 앞 ‘영철버거’가 다시 문을 연다. 2005년부터 있던 안암동 96번지 1층 매장을 떠나 맞은 편 건물 2층에 새로 자리 잡았다. [사진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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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매장 대신 맞은 편 건물 2층에 새로 문을 연 영철버거 주방과 계산대. [사진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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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본개업 전 가개업 상태인 영철버거 매장 모습. 일종의 ‘프리 오픈’이지만 햄버거를 사려는 대학생들이 줄을 서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서울 안암동 고려대학교 앞 명물인 ‘영철버거’가 6일부터 다시 영업을 시작한다. 지난해 7월 경영난으로 점포 문을 닫은 지 6개월 만이다. 매장 위치는 달라졌다. 2005년부터 유지해온 안암동 96번지 1층 매장을 떠나 맞은 편 건물 2층으로 옮겼다. 최종 학력이 초등학교 4학년인 이 대표는 2000년 고대 후문 앞 노점에서 시작한 ‘1000원 버거’를 2007년 전국 가맹점 80개를 둔 프랜차이즈 업체로 성장시켰다. 하지만 1000원 버거를 대신해 6000∼7000원 대 고급 수제버거로 주력 상품을 바꾸면서 학생들의 발길은 뜸해졌고 결국 폐업에 이르게 됐다.

이 대표는 “영철버거가 다시 문을 열게 된 이유는 사람 간의 끈끈한 정,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준 디지털 기술 덕분”이라고 말했다. 2004년부터 매년 2000만원 넘게 고려대에 장학금을 기부해온 이 대표의 폐업 소식에 재학생뿐만 아니라 졸업생·교수까지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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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대표가 5일 매장에서 감자칩 맛을 놓고 직원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특히 지난해 9월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가 주축이 돼 클라우드 펀딩 ‘비긴어게인 영철버거’ 프로젝트를 시작하자 모두 1870명이 참여해 6800여만원이 모였다. 당초 목표했던 금액(800만원)의 8배가 넘는 액수다. 클라우드 펀딩은 은행을 거치지 않고 온라인 플랫폼으로 투자금·대출금 등을 모으는 방법이다. 설동연(23) 고려대 정경대 학생회장은 “영철 아저씨와 학생들, 고려대는 약 15년 간 끈끈한 유대관계를 자랑해왔다”며 “매년 장학금까지 줬던 영철 아저씨에게 학생들이 보답을 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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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철버거의 주력 상품 ‘스트리트버거’. 가격은 2500원이다. [사진 김상선 기자]

졸업생들의 도움도 컸다. 통계학과 출신의 김진엽(30)씨를 비롯한 신한카드 빅데이터 센터 직원들은 고대 주변 상권 분석과 향후 마케팅 전략 등을 조언했다. ▲영철버거와 함께 자주 방문하는 점포 ▲특정 계층·세대가 매장을 자주 찾는 시간대 ▲1회 구입 당 평균 구매 비용 등 카드 전표를 통한 데이터 분석이 대표적이다. 이 대표는 "7000원대의 수제버거 전략만을 고집하지 않고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2500원 짜리 ‘영철 스트리트 버거’를 부활시킨 것도 바로 데이터 분석 결과 덕분"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기존에 6~7개였던 세트메뉴도 두 가지로 조정했다. ‘메뉴를 다양화할수록 재고 관리가 어려워진다’는 컨설팅을 받아들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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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철 대표가 자신이 직접 만든 햄버거가 앞에 놓인 주방 앞에 활짝 웃고 있다. [사진 김상선 기자]

이 대표는 "‘선한 일에는 선한 보답이 있다’는 뜻의 선유선보(善有善報)의 법칙을 요즘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점포 영업이 궤도에 올라서면 다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할 생각이다. "2016년 새해에는 더 열심히, 학생들의 응원에 보답하고 싶습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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