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건, 김정은 앞에서 짝다리 … 쇼맨십 강하고 당당한 젠틀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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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 걸쳐 실세</b> 김양건은 김일성 주석 때부터 실세 반열에 올랐다. 1994년 국제부 부부장 시절 방글라데시 민족사회당 대표단을 만난 김 주석을 수행한 김양건(원 안). 오른쪽 사진은 2009년 8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면담에 배석한 김양건.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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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함 속에서도 부드러움을 잃지 않은 ‘젠틀맨’. 북한이 30일 사망 사실을 공개한 북한의 대남총책 김양건 노동당 비서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느낌이다.

김정은, 김양건 부인에게 “이모”
이설주와 눈 맞추고 대화하기도

 김 비서는 지난해 10월 4일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식에 참석했다.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지시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최용해 당 비서와 함께였다. 북한 권력 실세 3인방의 남한 방문이었다. 현장 취재를 맡은 기자는 당시 김양건의 남한 체류 전 일정을 함께했다. 김양건은 12시간 동안 인천에 머물며 대남 정세에 밝다는 점을 드러내며, 자신감 있는 표정이었다. 첫 남한 방문을 어색해하며 긴장을 풀지 못하던 황병서·최용해와 달랐다. 취재진에게도 인사를 건네고 여유 있는 웃음을 보였다.

 당시 남북 간 첫 환담이 열린 인천 오크우드 호텔과 한식당인 영빈관에 취재진과 시민이 몰리자 황병서와 최용해는 서둘러 자리를 떴다. 하지만 김양건은 느긋한 걸음으로 김규현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현 외교안보수석)에게 다가가 귀엣말로 밀담을 나눴다.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듯한 장면이 연출되자 남측 행사 관계자들 사이에선 “대단한 쇼맨십”이란 말도 나왔다. 그러면서도 단장 격인 황병서를 깍듯이 챙기는 절제를 보였다. 그는 환담 때 “우리 (황병서) 총정치국장 동지의 승인을 받아서 말하겠다”고 말하곤 했다. 비공개 자리에선 “나도 어제서야 ‘남쪽에 다녀오라’는 (김정은의) 명령을 받고 급하게 내려왔다”며 급작스러운 방문의 속사정을 털어놓았다고 당시 자리를 함께한 한 참석자는 전했다.

김양건은 김일성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했다. 북한 노동당 국제부에서 잔뼈가 굵은 외교통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 시절인 1997년 4월 당 국제부장에 올랐다. 하지만 10년 만인 2007년 3월에는 대남사업을 관장하는 당 통일전선부장으로 변신했다.

 김정은 시대 들어 그는 다른 간부들과 달리 공포정치의 희생양이 되거나 좌천·숙청을 겪지 않았다. 이는 김정은 제1위원장이 이복형인 김정남 등 다른 형제를 제치고 후계자로 옹립되는 데 그가 기여했기 때문이란 게 대북 정보 당국의 분석이다. 김양건의 부인이 김정은의 생모 고영희(2004년 사망)와 가까워 김정은이 ‘이모’라고 불렀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 당국자는 “어려운 시기 생모와 자신을 도와 후계 권력을 거머쥘 수 있게 기여한 김양건에 대해 김정은으로선 각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을 단골 수행할 때도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등 위축된 모습을 보이는 다른 간부들과는 달랐다. 2년 전 처형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의 ‘죄목’에 포함된 짝다리 짚는 모습을 김양건이 스스럼없이 하는 장면도 포착됐다.

 이런 정황 때문에 김양건은 명목상의 국가 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뒤를 이을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사망함에 따라 남북관계에서의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새해 집권 5년 차를 맞는 김정은 권력의 핵심에서도 하차했다.

서재준 기자 suh.jaej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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