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권 놓겠다던 19대 국회, ‘몰래 특혜’만 늘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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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철수 열풍과 정치개혁 바람 속에 2012년 문을 연 19대 국회가 지난 4년간 내걸었던 ‘특권 내려놓기’ 약속들이 모두 휴지 조각이 된 것으로 중앙SUNDAY 취재 결과 확인됐다.

‘세비 30% 삭감’ 없던 일 되고
‘무노동 무임금’은 폐기 직전
불체포 특권 포기도 공염불
친·인척 보좌관도 그대로 둬

여야가 경쟁적으로 쏟아낸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과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불체포특권 포기와 국회의원 ‘무노동 무임금’ 원칙 도입, 국고 보조금 사용처 공개와 검증 약속 등이 공염불이 됐다. 반대로 ▶빌린 신용카드 결제 단말기를 사무실에 비치해놓고 국회의원의 시집을 판매하거나 ▶대기업이나 공공기관에 친인척과 지인의 취업을 청탁·알선하고 ▶보좌관의 월급을 의원의 개인 경비로 쓰는 ‘음성적 특권’ 챙기기가 기승을 부렸다. 낮은 법안 처리 건수와 개혁안 처리 미비로 역대 최악의 국회란 평가를 받고 있는 19대 국회가 지키지도 않을 특권 내려놓기 약속만 쏟아내고 실제로는 새로운 특혜 만들기에만 골몰한 게 드러났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국회의원 세비 30% 삭감은 약속 위반의 대표 사례다.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박지원 민주통합당(새정치민주연합의 전신) 원내대표가 당 소속 의원 전원의 서명을 받아 법안을 발의했고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도 “민주당의 세비 삭감안을 즉시 실천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법안은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에 상정된 뒤 단 한 번도 심사된 적이 없다. 그 사이 세비는 4년 연속 동결됐고, 국회는 한 술 더 떠 2016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 기본급 3% 인상까지 추진했다. 지난해 10월 새정치연합 정치혁신실천위원회(위원장 원혜영)가 “공정하고 객관적인 세비 산정을 위해 외부인사들로 위원회를 꾸려 세비를 결정토록 하자”며 제안했던 국회 내 세비산정위원회 설치 건도 없던 일이 됐다.

국회는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키겠다며 각종 수당의 삭감도 약속했지만 관련 법안이나 규칙들은 운영위에서 자동 폐기될 날만 기다리고 있다. 원내대표나 상임위원장들이 쌈짓돈처럼 나눠 쓰는 특수활동비도 마찬가지다. 지난 5월 ‘성완종 리스트’ 정국에서 홍준표 경남지사가 “아내가 (원내대표 시절의 특수)활동비를 생활비 등으로 썼다”고 밝히면서 논란이 점화되자 여야는 “현금 대신 카드를 써 용처를 남기겠다” “특활비 자체를 삭감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역시 현실화된 것은 없다.

19대 국회 4년간 2000억원 이상 지급된 정당 국고보조금에 관해서도 여야는 사용처에 대한 외부감사 등을 앞다퉈 주장했지만 새정치연합이 당 홈페이지에 사용 항목을 공개하고 있을 뿐 새누리당은 아무런 개선방안도 실천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을 제한한다는 명목으로 제출된 법안들 역시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19대 국회에 제출된 의원 체포 동의안 10건 중 3건이 ‘기간 경과’를 이유로 처리되지 않았다. 정치혁신의 단골 메뉴였던 ▶의원 징계 강화▶국회 윤리위원회에의 외부인사 충원 약속도 이뤄지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이 친·인척을 보좌관으로 등록하고 인건비를 사취하는 등 편법 운영되는 걸 막기 위한 법안도 폐기 직전이다. 여야는 2012년 ‘의원 본인 및 배우자의 4촌 이내 혈족 및 인척은 보좌진으로 채용할 수 없도록 하자’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3년 넘게 운영위가 법안 처리를 하지 않고 있다.

국회의 약속 위반에 대해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국회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꼴”이라고 비판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양학부 교수는 “국회의원 특권 포기와 정치개혁을 국회의 자정 노력에만 맡기기에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선거를 통해 심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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