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88 스포츠 스타] ‘응팔’ 그 시절, 팔팔했던 허재·김수녕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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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을 빛낸 스포츠 스타들. 왼쪽부터 서울올림픽 당시 과녁을 조준하는 ‘신궁’ 김수녕과 해태 우승 주역으로 연말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김성한(오른쪽은 김성래), 포항제철의 시즌 개막전에 출전한 ‘번개’ 박경훈과 실업농구 무대에 데뷔한 ‘특급 신인’ 허재. [중앙포토]

사람들은 추억을 먹고 산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tvN, 이하 응팔)이 사람들의 눈과 귀를 끌어당기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1988년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었던 스포츠 스타들은 누구였을까.

서울올림픽 양궁 2관왕 김수녕
한국시리즈 우승 해태 4번 김성한
프로축구 정상 오른 포철 박경훈
실업농구 기아 입단한 신인 허재

 ‘응팔’ 1회에서는 주인공 성덕선(이혜리 분)이 서울 올림픽 피켓걸로 활동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당시 한국 선수단에서 가장 화제가 된 이는 김수녕(42)이었다. ‘바가지 머리’를 한 17세 궁사 김수녕은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 선수가 올림픽에서 2관왕에 오른 건 그가 처음이었다.

 중앙일보 88년 10월 1일자 기사는 ‘김수녕의 최대 강점은 강인한 승부근성이다. 그는 다른 선수에게 1위 자리를 내주면 저녁 내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악바리 근성을 지녔다’고 전했다. 김수녕은 92년 바르셀로나와 2000년 시드니 대회에서도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 올림픽에서만 4개의 금메달을 획득했다.

 김수녕 대한양궁협회 이사는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에 머물고 있다. 2014년 사우디 왕가가 한국 대사관을 통해 압둘라 빈 압둘라지즈 국왕(올해 1월 사망)의 외손녀들을 가르칠 지도자를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수녕 이사가 최종 낙점을 받았다. 김 이사는 연봉 20만 달러의 파격적인 대우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덕선이의 골목 친구 ‘도롱뇽’ 류동룡(이동휘 분)은 프로야구단 MBC 청룡 점퍼를 즐겨 입는다. 당시 청룡의 성적은 보잘것없었다. 전기리그에선 7개 구단 중 꼴찌(17승2무35패), 후기리그는 5위(23승2무29패)에 그쳤다. 88시즌의 주인공은 해태였다. 해태는 전·후기리그를 모두 제패한 뒤 한국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며 ‘해태 왕조’를 열었다. 중심에는 4번타자 김성한(57)이 있었다. 김성한은 홈런·타점·장타율·승리타점(88년까지 시상) 4관왕과 함께 사상 첫 30홈런 고지까지 밟아 최우수선수(MVP)상을 받았다. 전남 나주에서 독립구단 창설을 준비하고 있는 김성한 전 KIA 감독은 “내 선수생활의 절정기였다. 그때는 연봉상한선(25%)이 있었다. 당시 78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단법인 한국물가정보가 발간한 물가총람에 따르면 당시 라면 1개는 100원, 버스 요금은 140원, 소주 1병은 250원이었다. 현재 9억~10억원 선인 은마아파트(76㎡) 시세는 5000만원이었다.

 프로축구에서는 사상 초유의 MVP 수상 거절 사태가 일어났다. 11월 12일 지금은 사라진 동대문운동장에서 유공-포항제철, 럭키금성-대우의 시즌 최종전이 열렸다. 별도의 시상식이 없던 당시에는 경기 뒤 곧바로 수상자를 선정했고, MVP로는 우승팀인 포철 수비수 박경훈(54)이 뽑혔다. 하지만 박경훈은 버스에서 내리지 않고 버텼다. 올림픽 대표팀에 차출돼 절반(24경기 중 12경기)밖에 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제주 감독직에서 물러난 박경훈 전주대 교수는 “후배 이기근(현 횡성FC 감독)이 리그 득점왕에 올랐는데 내가 받는 것은 부당하다고 느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응팔’에서 다정한 성동일(성동일 분)-성노을(최성원 분) 부자를 갈라놓은 건 농구대잔치였다.

 “이번 게임은 무조건 기아산업이 이겨부러. 강정수·유재학·정덕화, 이 셋이 모이면 완전 천하무적이랑게.” “삼성전자가 이길걸. 김진·김현준·오세웅, 완전 빵빵해.” “아빠가 깜빡해부렀다. 신인 특급 선수 허재가 있자네.”

 83년 출범한 농구대잔치는 ‘슛쟁이’ 이충희와 ‘전자슈터’ 김현준이 버티는 현대-삼성의 양강 체제였다. 하지만 88~89시즌부터 기아산업이 새로운 강자로 올라섰다. 기아는 김유택-한기범 쌍돛대가 골밑을 장악한 데다 허재까지 가세하면서 5년 연속 정상에 오르며 ‘기아 왕조’를 열었다.

 허재 전 감독은 “86년 창단한 기아산업이 먼저 (한)기범이 형과 (김)유택이 형을 영입했고, 88년에 내가 합류했다. 90년에 (강)동희가 가세해 ‘허-동-택 트리오’가 완성됐다”며 “88년 서울 올림픽에선 대한민국 선수단 대표로 선서를 했다. 그러곤 이충희·김현준(별세) 형과 힘을 합쳐 9위(2승5패)를 했다. 드라마 장면을 보며 옛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했다. KCC를 10년간 이끌며 두 차례 우승컵을 들었던 허 전 감독은 지난해 물러난 뒤 아들 허웅(22·동부)의 활약을 지켜보고 있다.

송지훈·김효경·박린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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