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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직무 관련 땐 출판기념회 찬조금도 뇌물” 첫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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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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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용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22일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법원은 신 의원에게 징역 2년6월에 벌금 3100만원을 선고했다. [뉴시스]

국회의원 출판기념회 때 찬조금 명목으로 제공한 금품은 뇌물이라는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특히 출판기념회 때 책값 명목으로 오간 돈의 뇌물 성립 요건과 관련, 법원의 가이드라인도 처음으로 제시됐다.

신학용 의원 유죄 … 징역 2년6월
유아교육법 개정안 발의 대가로
유치원총련서 3360만원 받은 혐의

 서울중앙지법 형사22부(부장 장준현)는 22일 신학용(63·3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에게 징역 2년6월에 벌금 3100만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공소 사실을 다투고 있는 만큼 법정구속은 하지 않았다. 신 의원은 ‘입법 로비’ 청탁과 함께 서울종합예술실용학교(SAC·서예종) 김민성(55) 이사장으로부터 1500만원을 받고 유치원총연합회로부터 3360만원을 받은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로 기소됐다. 출판기념회 문제로 기소된 건 신 의원이 처음이다. 이 중 유치원총연합회에서 받은 3360만원은 신 의원이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이던 2013년 9월 출판기념회를 통해 ‘쪼개기 후원금’으로 받았다. 사립유치원의 회계규정을 완화하는 ‘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 개정 청탁과 함께 단체 차원에서 전국 지회별로 20만~400만원씩의 찬조금을 모아 제공한 것이다. 이에 대해 신 의원은 “찬조금은 책값과 더불어 의정활동에 대한 후원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직무 관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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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1심 재판부는 출판기념회 때 오간 돈의 뇌물수수죄 판단 기준부터 제시했다. ▶특정 단체가 후원금을 조직적으로 조성·제공했는지 ▶받는 사람이 사전에 후원의사를 전달받아 인식하고 있었는지 ▶직무 관련 청탁 성격이 있는지 ▶지나치게 액수가 많지는 않은지 등이다.

 재판부는 “출판기념회는 실제 책을 파는 행사가 아니고 (신 의원이 받은) 3000여만원이라는 금액도 개인적인 친분으로 제공하는 돈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게 고액”이라며 “해당 찬조금은 국회의원의 의정활동에 대한 일상적인 후원금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교문위 위원장이었던 신 의원이 밀접한 이해관계를 갖고 있던 단체로부터 법률 개정을 도와달라는 청탁 명목으로 받은 금품”이라고 판단했다. 신 의원은 즉각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로 그동안 국회의원들이 자금을 모으는 주요 수단으로 인식됐던 출판기념회를 이용한 모금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해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출판기념회를 개최하면 회당 7000만~1억원을 모금할 수 있었다. 주요 당직을 거친 의원들은 최대 2억~3억원까지 모았다고 한다. 한 야당 중진의원 보좌관은 “매년 ‘시즌’이 되면 하루에도 2~3개씩 출판기념회가 열렸다”면서 “자금 마련을 위해 2년마다 일부러 책을 내는 의원들도 있었는데 지난해부터는 씨가 말랐다”고 털어놓았다.

 최근에는 노영민(58) 새정치 연합 의원이 국회 산업자원통상위 위원장 신분으로 의원실에 출판사의 신용카드 단말기를 설치해 놓고 산자위 산하 기관들에 ‘시집 강매’를 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서울남부지검은 노 의원의 정치자금법 위반 여부에 대해 수사 중이다.

 새누리당은 지난 3일 전국 시·도당에 출판기념회 개최를 자제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내려보냈다. “출판기념회에서 책을 판매하면 공천 심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고도 했다. 예정됐던 출판기념회의 취소 사례가 잇따랐다.

 최근엔 출판기념회를 책을 판매하지 않는 ‘북콘서트’로 대체하는 경향이 생겼다. 내년 총선에서 충북 제천-단양에 출마하는 권석창(49) 전 익산지방국토관리청장은 19일 북콘서트를 열면서 ‘현장에서 책을 판매하지 않는다’고 문자메시지를 보내 사전 공지했다. 인터넷으로 책을 사거나 책을 살 수 있는 서점을 안내했다.

 한편 신학용 의원과 함께 기소된 신계륜(61·4선) 새정치 연합 의원에게는 징역 2년에 벌금 2500만원이 선고됐다. 신계륜 의원은 서예종 김민성 이사장으로부터 학교 이름에서 ‘직업’자를 빼는 관련법 개정을 대가로 현금과 상품권 등 55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김경희·이유정·정종문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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