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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대구의 과열된 '박심 마케팅'…후보끼리 "난 진박, 넌 중박" '카스트제' 방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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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眞朴)-중박(中朴)-망박(望朴)-비박(非朴).

핫 클릭: 진실한 사람 감별법… 진박>중박>망박>비박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구에서 나오는 예비후보 구분법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답게 대통령과의 친밀도에 따라 후보들을 4가지로 나눴다. 브라만(사제)-크샤트리아(군인)-바이샤(농민ㆍ상인)-수드라(노예)로 구성된 인도의 신분제 카스트제도와 닮아 농반진반으로 “대구에 카스트제가 상륙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진박은 ‘진실한 사람+친박’의 줄임말이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내년 총선에서) 진실한 사람들만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한 데서 따왔다.중박은 “친박계는 맞지만 지난 대선 때 공로나 계파 내 입지가 중간”이란 뜻이다. 망박은 친박계가 되기를 희망하는 인사들, 비박은 친박계가 아닌 후보들을 가리킨다.

◇‘친박 마케팅’ 극심=대구에서 이런 등급론까지 나오게 된 배경은 뭘까. 한 친박계 인사는 “후보들이 너도나도 박근혜 마케팅에 열을 올리다 보니 같은 계파 내에서도 냉정하게 등급을 따지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 이명박 후보 쪽에 섰던 예비후보 A씨의 경우 최근 친박으로 변신했다. “박 대통령이 정계 입문할 때부터 도왔다. 내가 ‘원조친박’”이라 주장한다. 다른 예비후보 B씨도 이력에 이명박 정부 근무경력은 가린다. 대신 가족이 박근혜 정부 요직에 있었단 사실은 내세운다.

A, B씨 같은 후보들과의 차별화가 절실한 친박계 핵심들이 친박등급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이들의 기준으로 볼 때 A씨는 망박, B씨는 중박 정도다. 대구의 한 예비후보는 “일단 진박은 청와대ㆍ내각 출신이고, 나머지 대부분은 중박이거나 망박”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기준에 따르면 윤두현(대구 서) 전 청와대 홍보수석, 곽상도(달성) 전 민정수석, 전광삼(북갑) 전 춘추관장 등은 진박 후보다. 조만간 대구 동갑에 출사표를 던질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도 진박에 들 수 있단 평가다. 지난 19일 출마선언 때 친박계 현역 의원들이 대거 몰려가 지지해준 이재만 전 동구청장(동을)에 대해선 “중박에서 시작해 진박 반열에 올랐다”는 얘기가 나온다. 다만 전 전 춘추관장은 “정작 청와대 참모 출신들은 대통령의 이름을 함부로 거론할 수 없어 친박 마케팅에서 밀리는 역설도 존재한다”고 했다.

자칭 진박들로부터 중박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은 주성영 전 의원(북을),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달서을), 이인선 전 경북부지사(중남) 등이 꼽힌다. 하지만 새누리당 대구시당 관계자는 “이들도 '우리가 친박계 적자(嫡子)'라고 주장할만하다”고 했다. 주 전 의원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유세단장을 맡았고, 김 전 청장은 국정원 ‘댓글녀 사건’ 수사를 서둘러 종결했단 의혹으로 재판을 받았다. 이 전 부지사는 박 대통령이 의원일 때 지역구(달성)에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원장을 지냈다.

◇‘진박 감별사’까지 등장=예비후보들의 친박 서열 다툼이 복잡해지자 '진박 감별사'란 조어까지 등장했다. 친박 핵심 조원진(재선ㆍ달서병) 의원의 별명이 바로 그렇다. 실제로 그는 지난 19일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출정식에 가서 “누가 ‘진실한 사람(진박)’인지 헷갈리실 테지만, 조(원진)가 (지지하러) 가는 후보가 진실한 사람”이라고 축사를 했다.

이에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도전을 받고 있는 유승민 의원은 21일 기자간담회에서 “박 대통령은 특정인을 지적해 (후보로) 내려보낼 분이 아니다”고 반박했다. 또 다른 비박계 의원도 “‘진박이면 낙하산이라도 무조건 당선’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대구시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박 대통령 “진실한 사람은…”=박 대통령은 22일 국무회의에서 다시 ‘진실한 사람’에 대해 언급했다. “옛말에 들어갈 때 마음과 나올 때 마음이 한결같은 이가 진실된 사람이란 말이 있다”면서다. 그런뒤 “무엇을 취하고 얻기 위해 마음을 바꾸지 말고 일편단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라고 '진실한 사람'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이어 박 대통령은 “그동안 최선을 다해 주신 최경환 부총리와 황우여 부총리, 정종섭 행자부장관,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김희정 여성가족부 장관에게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들 5명은 모두 총선 출마 예정자다.

남궁욱ㆍ김경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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