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의 그림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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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호 4 면

다들 친구들이 그리울 때인가 봅니다. 지난?주말 사당역 근처 한 족발집은 저 같은 초로의 중년들로 가득했습니다. “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짜식, 너도 이제 폭삭 늙었구나.”?근 40년 만에 만났음에도 국민학교 동창들은 보자마자 알아보았습니다. 졸업하고 처음?만나는 녀석도 개구쟁이 적 얼굴은 그대로입니다. 저희는 4학년 때부터 남녀가 나뉘어서?시커먼 애들만 나왔지만, 수다는 아줌마들?저리가라입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을 하며 열심히 살아온 친구들. 이제 세상을?떠난 녀석들 이야기에 숙연했졌다가, 아이들?얘기가 나오면 어느새 다시 말들이 많아집니다.


그런데 이 장면, 어디선가 많이 보았다는 기시감이 들었습니다. 아, 이제 생각납니다. 김광규 시인의 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79)에 나오는 바로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 혁명이 두려운 기성세대가 되어 /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 회비를 만 원씩 걷고 /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 즐겁게 세상을?개탄하고 /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 모두가 살기 위해?살고 있었다 /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더 이상은 적지 않으렵니다. 왠지 부끄러워질 것 같아서입니다. 돈을 내고 부르는 노래는 더 이상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되어 떨어질 것 같지 않아서입니다.


정형모 문화에디터 h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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