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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주민 참여 없이는 죽어가는 도심 명물거리 못 살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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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기 상권의 점포 임대료 폭등 문제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사회적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기존 도심 주변부의 낙후된 지역에 개성 있는 공방과 점포들이 들어가 인기상권을 만들면 건물주들이 임대료를 천정부지로 올려 결국엔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는 사례가 되풀이되면서 갈등과 저항이 생겨나고 있다. 이른바 한국형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다.

 대도시 상업지구에서 벌어지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1990년대 서울 압구정동 로데오거리에서 시작해 가로수길·홍대앞·대학로·삼청동·북촌·서촌·성수 등 인기상권마다 전방위적으로 확산되면서 상권을 활성화한 상인들은 설 곳을 잃고 건물주만 이익을 챙기는 모순이 커지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존 상인들이 밀려난 자리를 대기업형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면서 과거 특색 있던 거리가 몰개성한 상업공간으로 변모해 거리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점이다. 가로수길·홍대앞 중심거리는 물론 소극장이 밀집한 문화거리였던 대학로도 소극장들이 빠져나가고 대형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점령한 몰개성한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서울시는 임차료 폭등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대학로·인사동·해방촌 등 서울시내 6개 지역에서 건물주-임차인-지자체 간 상생협약을 체결하는 등의 종합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건물주와 상인의 상생을 도모하고, 거리의 개성과 문화적 가치를 지키려는 노력이 시작된 것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점포 임대료라는 사적 계약에 지자체가 개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실효성은 의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자체의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공동체의 협력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미국 뉴욕에서는 지역개발 및 복지 등 지역 현안을 주민들이 합의해 결정하는 커뮤니티보드 제도를 50년대부터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획일화되기 쉬운 대도시에서 지역별 정체성과 문화적 다양성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도 단순히 임대료 차원을 넘어 거리의 정체성을 지키는 공동체 운동으로 발전하도록 제도적, 의식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