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동 노팀장] 노래방 부자 코드 맞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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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팀 노재현(45)팀장은 탬버린보다는 마이크를 주로 잡는 ‘노래방파(派)’입니다. 크고 우렁찬 목소리로 한음한음 또박또박 부르는 ‘노팀장표 창법’으로 동료들의 박수도 제법 받습니다. 그런데 취재하랴, 회식하랴…바쁜 노팀장, 정작 가족들과는 노래방 한번 같이 못갔다네요.

이번 주말에는 큰맘 먹고 둘째 기석(13)이가 좋아하는 최신 가요를 배워보기로 했습니다. 아들이 적어준 네 곡 중에서 고른 ‘세븐’의 ‘와줘’. 기석이도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배울 겁니다.

노팀장, 갑자기 자신의 애창곡이 ‘목장길따라’라네요. 노래방에 가면 트로트만 부르는 노팀장이지만, 어린 아들이 부를 노래 가사가 신경쓰이나 봅니다. 그래도 결국 아빠의 애창곡인 최희준씨의 ‘하숙생’이 기석이의 도전곡이 되었습니다.

노팀장, 복잡한 음계의 '와줘'를 들어보더니 잠시 당황합니다. 하지만 노팀장이 누굽니까. "노래가 단출하다"며 곧 자신감을 보입니다. "랩이 있는 노래로 할까요? " 기자의 말에 표정이 확 변합니다. "아냐아냐, 이 노래로 해. 근데 이 노래 부른 애들은 일곱명이냐?" 이런이런, 인기가요 순위 1위인 솔로가수 세븐이 울겠습니다.

가수 보아와 장나라를 좋아하는 기석이에게도 도전곡(하숙생)이 낯설긴 마찬가지입니다. 트로트는 한번도 불러본 적이 없답니다. 오늘의 선생님인 이병원(41) 음치클리닉 원장은 일단 아빠가 자신있는 '하숙생'을 함께 부르는 게 좋겠다네요.

"인.생.은-"

"잠깐만요. '인.생.은-'이 아니구요. '인생으은~' 하고 부드럽게 해주세요."

선생님은 노팀장의 또박또박 창법이 마음에 안드시나봅니다.

"인.생.은-" "아니, 그게 아니라니까요." 잘 아는 곡이라 자신있었는데…아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닙니다. '인생은'만 서른네번을 부르자 기석이도 슬슬 지겨운가 봅니다. 결국 잠시 쉬기로 했습니다.

"노팀장, 음치 아니시죠?" "음치는…아닐…걸?" 불안한 표정에 자신없는 목소리. 평소의 노팀장이 아닙니다. 이때 "마이크에 대고 '아' 해보세요"라는 선생님 말씀. 노팀장 얼른 마이크로 뛰어가 심각한 표정으로 "아~"라고 하네요. 저런, 음치 테스트가 아니라 마이크 테스트였답니다. 노팀장, 맥이 빠집니다.

"호흡에 문제가 있는 것 같군요. 자, 악보를 잠깐 놓으세요." 악보마저 뺏긴 노팀장, 복식호흡을 하기 위해 몸을 구부려 무릎 뒤를 손으로 잡고 숨을 후욱 들이쉽니다. 복식호흡을 하되 배를 들이밀었다 내밀었다 하지 말라는 것이 선생님의 주문입니다.

자, 다시 시작합니다. "인.생.은-" 기자, 사진기자, 조인스 동영상팀 기자마저 "인생으은~"하고 옆에서 따라부르는데도 노팀장의 딱딱한 창법은 요지부동입니다. "키가 좀 높은 것 같은데요…." "이건 그냥 소리만 작게 하는 것 같은데요…."

노팀장, 자꾸 따지지 말고 배에다 힘을 주세요!

"인생은~" "어, 지금 '인' 좋았어요."

1시간20분 만에 '인'자 하나 합격했습니다. 그래도 노팀장 좋아합니다.

'인생'이 풀리니까 노래가 일사천리로 풀립니다. 드디어 클라이막스! 아이쿠, 노팀장 목소리가 찢어집니다. "사실 높은 음에 자신이 없어서 소리를 지르는 거예요." 노팀장표 창법에 그런 비밀이 있었군요. 초조한지 담배 한대 피고 오겠답니다.

자, 선생님이 '비장의 무기' 양동이를 가져왔습니다. 양동이를 쓰면 자기 목소리가 잘 들린대요. 얼굴이 가려지니 부끄럼도 덜하고요. 선생님의 드럼 박자에 맞춰서 소리를 지르는 양동이 훈련을 마치더니 아빠는 악보도 안보고 끝까지 불렀습니다. 기석이도 변성기 전의 고운 목소리로 거뜬하게 곡을 소화했습니다.

이젠 노팀장의 도전곡 '와줘'입니다. "참많이 미워써엇~" 선생님이 노래 끝을 살짝 튕기자 "너무 간지럽지 않아요? 기생 오래비 같아요" 하고 얼굴을 찌푸리는 노팀장. "닭살…기석인 괜찮냐?"

선생님이 기석이가 잘하니까 혼자 해보랍니다. 노팀장, 갑자기 기자를 부릅니다. "그냥 나는 하숙생 부르고…." 전의(戰意) 상실입니다. 노팀장 다시 마이크 앞에 섰지만, "지쳐만 가는데~" 목소리가 찢어집니다. 모두들 세시간째 지쳐만 갑니다. 그래도 결국 노팀장 끝까지 1절을 불렀습니다. 기석이의 예상점수는 "제가 83점, 아빠가 75점 정도…." 하지만 선생님은 기석이에게 83점, 아빠에게 95점을 줬습니다. 16분음표가 잔뜩 있는 어려운 노래를 40대가 끝까지 불렀다나요.

자, 승부는 끝났지만 무대는 지금부터지요. 노래 분위기에 맞춰 기석이는 최희준 아저씨처럼 나비 넥타이를 매봤습니다. 노팀장은 "야, 이거 무슨 공사장에서 입는 옷이냐? 페인트 투성이네…"하면서도 힙합바지를 입어봅니다. 기석이는 여전히 '하숙생' 노래의 뜻을 잘 모르겠습니다. 노팀장은 '세븐'의 노래가 '간살스럽기만' 합니다. 하지만 이젠 노래방에서 아빠와 기석이가 함께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두 곡이나 생겼습니다.

구희령 기자
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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