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lunch] 퓨전 레스토랑 '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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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호텔리어로 각종 파티.이벤트.콘서트 등을 기획하는 일을 한다면 남들은 꽤나 호사스러운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나 나는 와인보다 소주, 스테이크보다 삼겹살을 즐기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얼마 전 맞벌이하는 아내에게 이끌려 서울 압구정동의 '옌(YEN.02-542-3186.사진)'이란 레스토랑에 가게 됐다. 포장마차나 고깃집처럼 어수선하면서도 정겨운 분위기를 좋아하는 입장에선 깔끔한 레스토랑 분위기의 외식은 별로 달갑지 않은 일이다.

입구부터 강남 일대의 다른 레스토랑과 마찬가지로 세련된 인테리어로 압도해왔다. 실내에 들어가 자리에 앉아서도 왠지 달갑지 않았다. 메뉴판을 펼쳐도 눈에 들어오는 메뉴가 없었다. 아내에게 아무거나 알아서 시키라고 퉁명스러운 말을 던지고는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차츰 생각이 달라졌다. 유리 테이블 아래로 물이 흐르고, 커튼 뒤로 나무가 심어져 있고…. 자연친화적인 시설과 소품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서서히 삼겹살과 소주에 대한 미련도 가시게 됐다.

잠시 후 커다란 접시 안에 닭튀김과 소스, 얇게 썬 오이와 청양고추가 들어있는 아게다시 스파이시 치킨(1만5천원)이란 애피타이저가 식탁에 올랐다. 닭튀김 한 점을 소스에 묻혀 베어 무니 매콤하고 부드러운 맛에 시원한 맥주가 절로 생각났다.

맥주 한병을 추가 주문했다. 이후부터 갑자기 아내의 손놀림이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너무 빨리 먹는 게 아닌가. 질세라 덩달아 치킨과 맥주를 입안에 우겨 넣었다. 맥주가 나오고 거의 1분 만에 요리 접시를 싹싹 비워버렸다. 이후로 옌에 가면 빠뜨리지 않는 메뉴가 아게다시 스파이시 치킨과 맥주다.

옌의 첫 경험은 삼겹살이 전부였던, 그래서 여간해선 아내가 좋아하는 패밀리 레스토랑과 퓨전 레스토랑을 가지 않던 나에게 새로운 맛 세상을 열어 주었다. 그 뒤로 동료들과의 술자리를 줄이고 아내와 함께 옌에서 자주 외식을 한다. 곰곰 생각해 보면 친구와 소주 멀어지게 하려는 아내의 작전에 넘어간 것 같다.

<이성훈 워커힐호텔 엔터테인먼트팀 이벤트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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