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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민주노총, 세계 유일 대화거부 단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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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김기찬
김기찬 기자 중앙일보 고용노동전문기자
김회룡
김회룡 기자 중앙일보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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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탈퇴한 건 1999년 2월이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노사정 대타협이 나온 직후다. 민주노총 내 강성파가 합의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결국 지도부가 총사퇴하고, 노사정위로 향하는 문을 걸어 잠갔다. 그렇게 17년이 흘렀다. 그동안 민주노총은 노사정위에서 ‘주5일 근무제 시행’ ‘복수노조 허용과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 같은 것을 두고 정부·경영계·한국노총이 협상을 할 때마다 거리로 뛰쳐나왔다. 2006년엔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에 합의하고 나오던 이용득(현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격한 반발에도 노사정위에서 논의된 것들은 지금 대부분 시행 중이다. 어느 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전 세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거부하는 단체는 민주노총이 유일할 것”이라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말 조계사로 피신했다. 그러곤 정부와 대화, 노동개악 중단 등에 대한 중재를 조계종 화쟁위에 요청했다. 노사정위에서 1년 넘게 진행된 대화에는 참여하지 않다 느닷없이 정부와 대화하자고 나선 셈이다. 어떻게 보면 한국노총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민주노총만이 유일한 노동계 대표라는 잘못된 판단을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올해 2월에도 그랬다. 한 위원장은 “박근혜 대통령과 독대가 성사되지 않으면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했다. 대통령 독대가 총파업 조건이라는 데 노조원은 황당해했다. 현대차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억지 파업”이라고 일갈했다. 올해 두 차례 총파업은 흐지부지 끝났다. 대화가 진행될 땐 거부하다 마무리되면 정부를 찾는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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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익명을 요구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정치권의 책임도 크다”고 말했다. “지난 17년 동안 노동법 관련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일부 정치권이 노사정 합의보다 민주노총을 내세웠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붙여서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1일 민주노총 지도부를 만나 “노동개혁 악법을 끝까지 막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회에선들 대화가 될 리 만무하다. 뭐가 문제인지 따지고, 합리선을 찾으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사실 국회가 논란을 정리한 적도 없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민주노총을 참여시킨 노사정소위를 꾸려 근로시간 단축과 통상임금 문제를 다뤘지만 보고서 한 장 못 냈다. 정략과 이념만 난무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노동개혁을 두고 그 전철을 밟지 않을까 걱정이다.

 9·15 노사정 대타협을 두고 세계 각국이 “매우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합의”라고 부러워한다. 전 세계가 부러워할 일을 우리가 먼저 하는 게 이렇게 어려워서야.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