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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전략 변화와 한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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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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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

박근혜 대통령이 이룩한 아마도 가장 중요한 외교 업적은 한·중 관계의 강화다. 한국과는 대조적으로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미국과 다른 나라들은 2010년 이후 대(對) 중국 관계가 악화일로다. 중국의 전략 지형이 더 나쁜 쪽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서도 중국의 국제정치 접근법이 바뀌고 있다는 게 감지된다. 변화를 되돌리려면 한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중국의 ‘평화적 부상’은 옛말
남중국해에서 공세로 전환
중국 전략을 회귀시키려면
한국의 적극적 개입이 필요

 이전에 중국은 스스로 국제체제에 평화롭게 부상하겠다는 ‘화평굴기’(和平?起, peaceful rise)를 표방하며 주변국들을 안심시켰다. 2010년을 전후로 아태지역에 경고음이 들리기 시작했다. 관련국들이 보기엔 천안함 침몰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미치도록’ 공평했다. 그때 중국이 평양에 대해 불쾌감을 느끼고 있다는 소문이 돌기는 했다. 하지만 핵 문제에 대해선 진전이 없는 가운데 북·중 경제관계는 오히려 계속 심화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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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일본 영해인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서 중국과 일본이 충돌했다. 분노한 중국은 일본인 기업인들을 구속하고 중국 내 일본인들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전국적 반일 시위를 방치했다.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남중국해에 대한 중국의 공세적인 영유권 주장이다. 법적으로는 근거가 약한 주장이다. 동남아 국가들과 중국이 주장하는 배타적경제수역(EEZ)이 겹친다. 게다가 중국은 맹렬하게 산호초·암초를 인공섬으로 조성해 군사 목적으로 보이는 활주로와 기타 시설들을 건설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은 계속 국제적인 행동규범을 위협하고 있다.

 중국의 이러한 새로운 대전략(大戰略)은 애초 의도와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우리는 이 지역 자본의 ‘미국 회귀’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중국 때문에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손실에 대비하려는 시도다.

 박 대통령의 9월 중국 방문은 논란을 불러왔다. 열병식 단상에는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뿐만 아니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있었다. 박 대통령의 워싱턴 방문으로 한·미 양국은 굳건한 동맹 관계를 재확인했다. 최근 일본의 집단자위권 확보를 위한 안보법안 통과에 대해 한국은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일본 입장에서 보면, 중국이 제기하는 도전을 다룰 필요성이 제기됐다. 안보법안에 대한 일본 국내의 반대는 거세다. 하지만 2010년 이후 중국에 대한 일본 내 여론은 악화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아직 인상적이다. 또 중국의 성장은 아태지역 경제나 세계 경제에 이롭다. 하지만 중국 경제의 성장은 둔화하고 있다. 투자를 둘러싼 분쟁은 중국의 평판을 나쁘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내년 여름에 미 의회에서 비준될 가능성이 크다. 추가 회원국을 끌어들이게 될 것이다.

 중국이 주변국들을 안심시키는 접근법으로 회귀한다면 중국과 아태지역 모두에 이롭다. 중국의 외교정책 회귀는 우선 한반도에서 실행되는 게 좋다. 2013년 6월 시진핑 국가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은 캘리포니아 서니랜즈에서 개최된 정상회담에서 북한 문제를 공통 관심사로 부각시켰다.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 합의했다. 북한이 또 다른 자멸적 미사일·핵실험을 하지 못하도록 중국이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한국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한다는 신호를 보내려면 중국은 북한이 비핵화 회담에 복귀하도록 중재에 나서야 한다.

 워싱턴을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은 사이버 안보 문제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을 보였다. 미국은 희망적인 신호를 발견했다. 워싱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오바마 대통령은 아태지역의 다른 당사국에도 확장될 수 있는 새로운 협력 메커니즘을 수립하는 데 합의했다. 한국은 사이버 공격의 주요 타깃 중 하나가 됐다. 상업 스파이 활동에 대한 보다 효과적인 중국의 대응과 관련해 미국과 한국은 이해가 일치한다.

 미국은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재개를 환영했다. 이는 부분적으로 서울과 베이징이 역사 문제를 극복하겠다는 의도가 읽혔기 때문이다. 연말까지 역사 문제가 해결되려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할 일이 많다. 한·일 관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은 공통 관심사에 대해 한목소리를 낼 수 없다.

 남중국해 분쟁은 한국의 국가 이익과 동떨어진 문제로 보일 수 있다. 박근혜 행정부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직접 개입하는 문제에 대해 신중하게 대처해왔다. 하지만 항행의 자유나 분쟁의 평화적 해결 같은 외교정책의 일반원칙을 재론하는 것만으로는 한국이 역할을 충분히 다했다고 할 수 없다.

 미국은 중국을 ‘봉쇄’할 의지도 없고 능력도 없다. 중국의 평화와 번영은 아태지역 모든 나라에 이롭다. 미국은 긍정적인 한·중 관계에 대해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을 주변국들을 안심시키는 행태로 복귀하게 만들기 위해선 모든 나라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 한국 또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

스테판 해거드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UCSD)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