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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성장 1%도 어려워… 대만 표심, 야당 쏠림 현상 심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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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5호 10면

1 차이잉원 민진당 주석겸 대만 총통 선거 후보가 18일 타이베이의 당사에서 천젠런 부총통 후보를 소개하며 박수를 치고 있다.

2 같은 날 주리룬 국민당 주석 겸 총통 후보가 당사에서 왕루쉬안 부총통 후보를 소개하고 있다. 타이베이=장세정 기자

지난 18일 오후 대만 수도 타이베이(臺北) 시내에서 ‘젊음의 거리’로 통하는 시먼(西門)역 부근. 일본식 이자카야 식당 주방장 우(吳·30)는 “주로 내국인 손님을 대상으로 식당을 시작한 지 3년쯤 됐는데 소비가 침체돼 최근 들어 영업이 특히 잘 안 된다”고 푸념했다.


직장 생활 초년병 리(李·25·여)는 “큰 기업은 중국에 투자하거나 무역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지 몰라도 젊은이들과 일반 국민의 생활은 이전보다 어려워졌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경제가 안 좋고 집권 국민당 마잉주(馬英九) 총통의 인기가 워낙 바닥이어서 내년 1월 16일 총통 선거 결과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며 “대만 젊은이들은 변화를 절실히 원한다”고 주장했다.


15~18일 취재한 대만사회는 올해 경제성장률 1% 달성조차 버겁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로 활력이 많이 떨어진 모습이었다. 야당인 민진당은 유권자들의 이런 불만 심리를 잘 파고들어 총통 선거 지지율에서 집권 국민당을 20%포인트 정도 여유 있게 앞서가고 있다. 타이베이 중정(中正)구 베이핑둥(北平東)로의 민진당 당사에는 ‘차이잉원(蔡英文) 대만에 불을 밝히다(點亮臺灣)’라는 구호가 내걸려 있었다. 첫 미혼 여성 총통 후보자인 차이잉원(59) 민진당 주석이 경기 침체로 어두워진 대만 사회를 다시 밝히겠다는 의미다.


이에 맞서 타이베이 중산(中山)구 바더(八德)로에 있는 국민당 당사에는 주리룬(朱立倫·54) 당 주석 겸 총통 선거 후보가 혁신·민주·공의(公義)를 내걸었다.


위기의 대만은 어디로 향할까. 지난 7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마잉주 대만 총통의 첫 양안 정상회담인 시마후이(習馬會) 이후 양안 관계는 어떻게 전개될까. 중앙SUNDAY가 황제정(黃介正) 단장(淡江)대 국제사무 및 전략연구소 교수, 왕젠취안(王健全) 중화경제연구원 부원장, 장유쭝(張佑宗) 대만대 사회과학원 부원장(정치학과 교수), 차이중민(蔡中民) 대만정치학회 사무총장(정치대 정치학과 교수) 등 대만의 정치·경제 전문가 4명을 현지에서 만났다. 특히 황 교수는 차이잉원 후보가 천수이볜(陳水扁) 전 총통 정부에서 대륙위원회 주임(장관급)으로 일할 때 부주임(차관급)을 역임한 인연이 있다. 인터뷰는 각각 이뤄졌지만 유사한 주제별로 묶어 문답을 재구성했다.

시진핑·마잉주 회담, 선거 영향 적어 -시마후이가 총통 선거에 얼마나 영향을 줬나. 황제정(이하 황)=일부 영향을 줬지만 선거 판도를 반전시키지는 못했다. 주 후보는 반겼지만 결과적으로는 선거에 큰 도움이 안 됐다. 차이 후보는 회담 개최 과정이 불투명하다고 비판했다. 차이중민(이하 차이)=거의 영향이 없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는 경제 문제다. 대만 국민은 양안 정상회담과 총통 선거를 분리해본다.


-왜 이 시점에 시마후이가 성사됐다고 보나. 황=중국은 민진당이 승리할 것으로 본 것 같다. 민진당이 집권하면 4년 또는 8년간 양안 최고지도자가 만날 기회가 없어질 것으로 보고 선거 전에 만난 것 같다. 늦게 만나는 것보다는 일찍 만나는 게 낫다. 대만 국민에게 중국 대륙이 ‘하나의 중국(一個中國)’ 원칙에 따라 양안 교류의 틀을 이어갈 것이라고 확실히 보여줄 필요도 있었을 것이다. 마 총통 입장에서는 국민당 선거 지원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치적을 만들기 위해 만났을 것이다.


양안 관계 개선 바라지만 중국 경계 -집권 국민당의 마 총통은 왜 인기가 바닥인가. 황=8년 전 엄청난 기대를 했는데 마 총통이 집권하자 미국에서 리먼브러더스 사태가 터졌다. 대만 사람들은 모순적인 심리상태가 있다. 양안 관계 개선을 바라지만 중국이 대만에 지나치게 영향을 주는 것은 싫어한다. 돈은 중국에서 벌더라도 대만을 어떻게 하지 말라는 요구다. 대만 국민은 정부가 중국에 “아니요(No)”라고 말할 권리를 갖길 원한다. 그런데 중국 경제가 강해지자 대만은 위협적이라고 느끼게 된 것이다. 이런 불만이 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번 선거의 최대 이슈라는 대만 경제 상황은 어떤가. 왕젠취안(이하 왕)=디플레는 아니고 경기 후퇴(recession) 상황이다. 수출·투자·소비 모두 안 좋다. 법으로 정부의 채무 한도를 국내총생산(GDP)의 40%로 제한하고 있는데 이미 39%를 넘었기 때문에 경기 부양 여력도 없다. 정부가 특별 예산을 편성하려고 해도 총통 선거를 앞두고 야당인 민진당이 여당에 유리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장유쭝(이하 장)=마 총통이 국회와 협력도 잘못했다. 같은 국민당인데도 관계가 불편한 왕진핑(王金平) 입법원장(국회의장)을 끌어내리려다 실패하면서 오히려 마 총통의 이미지만 나빠졌다.


-2010년 타결된 ‘양안 자유무역협정(FTA)’은 대만 경제에 큰 혜택을 주지 않았나. 왕=쉽게 협상할 수 있는 품목부터 포함시킨 조기수확프로그램(EHP)은 적용됐지만 핵심 상품과 서비스 관련 협정은 입법원에서 아직도 통과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을 개방할 경우 일자리 기회를 대륙에 빼앗길 것을 우려한 대학생들이 강하게 반대하기 때문이다. 금융·관광 등 서비스업 시장에 진출하기 좋은데도 시간을 지체하는 동안 한·중 FTA가 체결됐다.


-중국과의 교류 확대는 대만에 축복인가, 재앙인가. 왕=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하는 큰 제조업체들은 너무 쉽게 돈을 벌었고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했다. 그 와중에 중국 기업이 부상해 대만의 우위를 위협하고 있다. 그래도 제조업은 대륙과 협력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교육 개혁이 필요하다. 대학생 정원을 줄이고 서비스업을 대형화해야 한다.


재력가 집안 차이 후보, 외성인 집안 주 후보 -차이 후보는 어떤 정치인인가. 황=그는 프라이버시를 중시해 다른 사람이 자기 얘기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언론의 조명을 즐긴다. 차이=차이 후보는 4년 전에 출마 경험이 있어 준비된 총통 후보다. 그는 양국론(兩國論)을 주장한 리덩후이(李登輝) 정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교섭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영어가 유창하다. 장=재력가인 부친 차이제성(蔡潔生)이 둘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얻은 딸이다. 대학 시절 연애는 했다고 들었다.


-주 후보는 어떤 정치인인가. 차이=지난해 지방 선거에서 국민당 후보로 유일하게 신베이(新北) 시장에 당선돼 화제가 됐다. 장=군인이었던 부친은 대륙 출신인 외성인(外省人)이다.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를 받은 부인은 딸과 같이 미국에 산다는 얘기가 있다.


차이잉원 득표율 60% 넘을지 관심 -대만 정치 판도가 8년 만에 급격히 바뀐 이유는. 장=소득이 늘지 않는 상황에서 몇 년 전 마 총통이 유가와 전기요금을 동시에 올려 반발을 샀다. 지지율이 9%까지 떨어졌다. 천수이볜이 부패했을 때의 지지율인 14%보다도 낮다. 마 총통은 청렴 이미지로 2008년 높은 지지를 얻었지만 8년 만에 무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렴하면서 일 못하는 것보다 차라리 좀 부패하더라도 일 잘하는 게 더 낫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다.


-내년 1월 총통 선거를 어떻게 전망하나. 황=민진당이 승리할 것이다. 대만 국민은 양안 경제 통계가 아니라 자기 지갑을 보는데, 현실에 불만이 많다. 차이=국민당이 후보를 훙슈주(洪秀柱)에서 주리룬으로 교체한 뒤 주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 추세이지만 차이 후보의 당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장=차이 후보가 득표율 50%를 넘을 가능성이 있다. 마 총통이 얻었던 57%를 넘을지 관심사다. 60%를 돌파하면 강력한 총통이 될 수 있다.


-제3후보인 친민당 쑹추위(宋楚瑜) 후보는 변수가 될 수 있나. 황=그가 주 후보를 지지하고 사퇴할 가능성은 없다. 그는 총통 선거보다는 자신이 속한 친민당의 입법원(국회) 선거가 목적이다.


-대만에서 사상 처음 미혼 여성 총통이 나오는 것인가. 차이=동아시아 전통과 문화를 감안하면 큰 변화다. 장=그가 ‘제2의 마잉주’라는 말도 나온다. 그래도 마 총통보다는 총명하고 학습 능력이 있다고 본다.


차이잉원 당선 땐 중국 의존도 줄일 것 -양안 경제 교류에 대해 주 후보와 차이 후보의 정책은 다른가. 왕=주 후보는 양안의 지속적 교류 협력을 지지한다. 차이 후보는 대륙에 너무 집중 투자하는 것을 피하고 동남아 시장으로 위험을 분산해 투자하자고 말한다.


-차이 후보가 집권하면 대만 독립을 추진할까. 황=그는 대륙위원회 주임 시절에 하나의 중국을 인정한 ‘92공식(共識·컨센서스)’을 반대했다. 차이 후보는 양측의 주권을 강조하고 양안 관계의 현상유지를 주장한다. 독립을 거론하면 양안 관계는 끝장날 것이다. 장=여당이든 야당이든 양안 관계는 현상유지가 정답이라고 본다. 차이 후보도 대만 헌법을 강조한다.


-국민당과 민진당의 대미 노선은 어떻게 다른가. 장=국민당은 중국에, 민진당은 상대적으로 미국에 더 가깝다. 차이 후보가 당선되면 대만의 중국 의존도를 줄이려고 할 것이다.


-주 후보와 차이 후보를 보는 미국의 시각은 어떤가. 황=미국의 아태 지역 이익에 반하지 않으면 누구와도 대화한다는 입장이다.


-남중국해에서 미·중이 충돌하면 대만의 선택은. 장=양측이 충돌하면 대만의 반사이익이 커진다. 대만이 사고 싶어 하는 잠수함과 F-35 전투기를 미국이 안 팔고 있는데 미·중이 충돌하면 미국이 대만에 팔 수도 있을 것이다.


-양안 관계의 미래를 어떻게 전망하나. 황=큰 틀에서 보면 춘추시대 이후로 중국은 하나다. 양안이 하나의 중국이란 큰 틀 안에 오래 있으면 통일이나 마찬가지다. 『삼국지』에 나오듯 오래 분열되면 반드시 하나로 합쳐진다(分久必合). 남북한도 마찬가지다.


타이베이=장세정 기자 zh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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