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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 땐 표결, 표결 땐 승복을 … 팔로어십 살아야 정치가 산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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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과거 정당은 ‘운동권 조직’ 같았다. 김영삼(YS)·김대중(DJ) 등 강력한 리더 아래 민주화를 위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좌형우, 우동영’으로 불린 YS의 측근인 최형우 전 의원과 김동영 전 의원이 당시 팔로어십(followership)의 전형이다.

양김 시대 그 후 <하>
의원들, 계파 행동대원서 벗어나
입법역량·전문성으로 승부해야
카리스마 리더십이 사라진 지금
집단적 지성 가장 중요한 시대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새 리더십이 자리를 잡지 못한 동시에 팔로어십도 실종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중앙대 장훈(정치국제학) 교수는 “당내 민주화와 맞물려 리더십과 팔로어십 모두 약해졌는데 결속력이 약해진 현재의 정당에선 리더십 못지않게 팔로어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정치권에는 자유만 취하고 책임은 지지 않으려는 이가 많다”고 지적했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당내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여전히 의사결정은 몇몇 사람이 하고, 나머지는 ‘따르라’는 식인데 YS·DJ 같은 카리스마적 리더가 없어진 지금은 먹히지 않는 방법”라며 “여기에 소계파의 행동대원이면서 전체 리더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혼재돼 팔로어십의 위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윤 센터장은 “의원들도 각 계파의 행동대원처럼 행동하지 말고 입법 역량, 전문성으로 승부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 팔로어십을 보여 줘야 한다”고 했다.

 팔로어십의 실종은 승복 대신 불복을 낳는다. 동국대 박명호(정치외교학) 교수는 “리더가 승복의 명분을 줘야 하긴 하지만 팔로어들이 당 리더나 당의 결정에 승복하는 모습을 잘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직접 선출한 당 대표나 원내대표 등 지도부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아 합리적인 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거나 여야 지도부 간 합의가 당내 논의 과정에서 휴지 조각이 되는 것에 대한 지적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선 의원총회 등에서 당론을 정할 때 표결을 통해 다수의 합리적 의견에 무게가 실리게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교수는 “의원총회에서의 표결을 포함한 다수결의 원칙에 대한 이해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선출된 권력인 의원들이면서도 현재는 의총에서 표결을 하는 건 금기시한다. 정책이든 정치 현안이든 합의를 우선 추구하되 합의가 안 되면 표결로 의사를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설훈 의원도 “의총에서 의원 전원이 자기 입장을 밝히면 강경파의 목소리도 소용없어진다”며 “의총 참석 명단은 물론이고 의총 논의 과정을 모두 공개해 자기 발언에 책임지게 하면 말썽을 일으키는 발언은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통 강화도 해법으로 제시됐다. ‘무조건 따르라’는 식의 리더십이 먹히지 않는 만큼 리더들이 목표와 비전을 명확히 공유해야 한다는 취지다. 고려대 임혁백(정치외교학) 교수는 “가장 큰 리더십은 좋은 팔로어십”이라고 말했다. 한국외대 이정희(정치외교학) 교수도 “진정한 리더는 국민을 주인으로 보고 본인은 팔로어가 되는 것”이라며 “리더십과 팔로어십은 동전의 양면”이라고 했다.

 ‘무조건 따르는’ 팔로어십이 바람직하진 않다는 견해도 있었다.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언론을 통해 대통령이 A라고 말하면 당론도 A와 비슷하게 정해지고, 의총에선 논쟁보다 그걸 추인한다”며 “의원총회에서 백화제방식으로 의사를 표출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당이고 건강한 당“이라고 말했다. 새정치연합 원혜영 의원은 “민주주의를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게 팔로어십”이라며 “강한 리더십을 가진 사람을 기다리면서 한탄할 게 아니라 집단적 지성이 작동할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효성 기자 hyoz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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