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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표지갈이' 교수 200여 명 적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남의 책 표지만 바꾸는 이른바 ‘표지갈이’ 수법으로 전공서적을 출간하거나 이를 묵인한 대학교수들이 무더기로 검찰에 적발됐다.

의정부지검 형사5부(권순정 부장검사)는 24일 저작권법 위반 및 업무방해 등 혐의로 전국 50여 개 대학 교수 200여 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교수들과 공모한 3개 출판사 임직원 4명도 함께 입건했다.

해당 교수들은 전공서적 표지에 적힌 저자명을 자신의 이름으로 바꾸거나 책 제목에 한두 글자를 넣거나 빼는 수법으로 새 책을 출간한 혐의다. 책을 쓴 교수들은 ‘표지갈이’를 한 책이 제작ㆍ유통되는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혐의도 받고 있다. 표지갈이를 한 교수 중에는 국공립대와 서울 유명 사립대 교수, 각종 학회장 등도 포함돼 있다. 이들 중 99%는 이공계 전공 교수들이다.

검찰 조사 결과 교수 한 명이 전공서적 1∼4권을 표지갈이 수법으로 출간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소속 대학의 재임용 평가를 앞두고 연구 실적을 남기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일부는 한 번 표지갈이를 했다가 출판사에 약점을 잡혀 출판사와 다른 교수들의 표지갈이를 눈감아주기도 했다. 이공계 교수들의 경우 이공계 서적 출판이 어려운 출판업계 특성을 감안해 출판사 확보를 위해 표지갈이를 묵인했다. 일부 교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표지갈이를 해서 출간한 전공 서적을 팔아 인세를 챙기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출판사 측은 표지갈이 서적 출간을 통해 비인기 전공서적 재고를 처리하는 데 활용했다. 출판사들은 또 교수들이 다른 출판사로 옮겨가지 못하도록 약점을 잡는 방법으로 이 같은 수법을 사용했다.

검찰은 지난달 서울과 경기 파주 지역 출판사 3곳 등을 압수수색해 e메일과 연구 실적 등 증거를 확보했으며 교수 200여 명에 대한 소환 조사를 마친 뒤 다음 달 초 이들을 기소할 방침이다.

김영종 의정부지검 차장검사는 “표지갈이는 1980년대부터 대학가와 출판업계에서 사용된 수법”이라며 “표지갈이 범행이 전국 상당수 대학에서 이뤄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의정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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