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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칼럼

응답하라 201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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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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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조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최근 멜로 영화 ‘이터널 선샤인’이 10년 만에 재개봉해 화제가 되고 있다. 관객 수 25만 명을 돌파하면서 재개봉 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이 영화는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블록버스터나 액션영화가 아니다. 첫 개봉 때 그다지 흥행하지도 못했기 때문에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주로 여성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탄 게 흥행 비결이라고 한다.

 이미 익숙해진 ‘응답하라’ 시리즈 또한 재등장해 복고 열풍을 불러오고 있다. 한 케이블 채널에서 방송하는 ‘응답하라 1988’은 첫 방송부터 화제를 모았다. 드라마에 나오는 촌스러운 청청패션, 앞머리뽕, 서울 올림픽 피켓걸의 모습들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80년대로 돌아간 듯하다. 그 시절을 기억하는 중년층은 물론 태어나지도 않았던 90년대생 젊은 층까지 열광하고 있다. 10대들의 학교 일상에서 ‘아이고 성 사장! 아이고 김 사장~ 반갑구만~!’이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을 정도다.

 10년도 더 된 옛날 영화나 20년도 더 지난 시대를 표현한 드라마가 이렇게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크린 속의 한 사람만을 위한 순정, TV 속 정겨운 이웃들과 함께하는 쌍문동은 현재는 찾아보기 힘들다. 몇 달 전만 해도 인스턴트식 사랑 노래인 ‘썸’이 최대의 히트곡이었다. 높아지는 전셋값으로 한 동네에서 10년 이상 살기도 힘들어졌다. 첫사랑, 동네 친구,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를 점점 쓸 일이 없어지고 있다. 나 또한 드라마를 보면서 ‘저 따뜻한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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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런데 며칠 전 시골에 사는 사촌동생들이 서울에 오고 싶다고 말했다. 서울에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아이들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어디냐 했더니, 남산 타워나 63빌딩이 아닌 양화대교라고 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지겨운 출근길인 양화대교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 제목이자 가장 가고 싶은 여행지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됐다.

 프랑스 철학자 알랭 드 보통은 “책에 나왔던 장소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을 책에 나왔던 장소처럼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곳이 뮤직비디오, 영화, 책, 드라마에 나오는 아주 특별한 곳이 되기도 한다. 먼 훗날 지금 현재의 우리네 모습이 ‘응답하라 2015’라는 드라마로 나올 수 있다는 재밌는 상상을 해보자.

 언제나 그랬듯 2016년이 오는 순간, 곧바로 지금 2015년을 진심으로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에게 여행지가 되는 이곳,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여행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그것 또한 새로운 즐거움이 되지 않을까. 응답하라 2015!

박윤조 단국대 언론홍보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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