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부와 협력 필요한데 민심이 … 수지 ‘반쪽짜리 권력’ 딜레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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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미얀마에 봄이 온다. 53년간 군부독재라는 황무지를 거쳐 맞는 봄이다. 미얀마는 지난 8일 실시된 25년 만의 자유총선에서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야당 민주주의민족동맹(NLD)가 압승을 거뒀다. 16일 현재 90% 이상의 개표가 완료된 가운데 NLD는 상원 135석, 하원 255석을 확보해 전체 의석의 78%를 얻었다. 미얀마는 상하원에서 대통령을 선출하는 간선제이기에 대통령을 배출할 수 있는 권력을 획득한 것이다. 하지만 봄이 온다고 오랜 황무지에 바로 꽃이 피진 않는다. 미얀마가 실질적 민주국가로 성장하기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국민, 강도 높은 개혁 요구 가능성
소수민족·경제재건 등 숙제 산적

 우선 사회 곳곳에 포진한 군부세력과의 화해가 필수다. 군부가 배출한 테인 세인 대통령은 15일 “약속대로 정부는 자유선거를 실시했고, 권력은 체계적으로 이양될 것”이라고 밝히는 등 거듭 군부 위협설을 불식시켰다. 군이 선거를 부정하지 않아도 군은 여전히 미얀마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전 분야에 뿌리깊게 자리하고 있다. 군은 상하원 의석의 25%를 보장받고 있고 국방과 치안 등의 권한을 갖고 있다. 수지 여사도 선거 내내 군부와의 협력을 약속했지만 민심이 문제다. 변화를 원하는 미얀마 국민들이 기득권을 가진 군부에 대해 강도높은 개혁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소수민족 문제도 복잡한 과제다. 종교와 종족, 주변국가까지 얽힌 소수민족 문제는 미얀마의 시한폭탄이나 다름없다. 현 군부가 8개 소수민족과 휴전협정을 체결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했다. 내부 통합이라는 과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언제든 종족 간 유혈충돌이 발생할 수 있고, 군부가 이를 명분으로 권력을 빼앗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미얀마 경제 재건도 고민이다. NLD는 민주화를 기반으로 강도높은 개혁개방과 외국인 투자정책을 펼 계획이지만 집권경험이 없어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미얀마가 가진 지정학적 중요성도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동남아시아 중앙에 위치한 미얀마는 중국과 인도를 연결하는 핵심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중국의 집중 투자를 받았다. 미국은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에 맞설 카드로 미얀마를 선택하고 민주화와 ‘수지 여사 대통령 만들기’를 적극 추진 중이다. 수지 여사는 전통적 등거리 외교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지정학적 중요성이 미얀마를 강대국의 각축장으로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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