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view &] 세계 83위 은행수익성, 이대로 둘 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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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구
은행연합회장

한국 금융은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경쟁력 순위 80위로 아프리카의 우간다(81위) 수준이라는 비난을 들었다. 올해는 87위로 더 떨어져 우간다(81위)보다도 못한 처지로 전락했다. 하지만 이같은 결과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한다. 다른 부문의 결과를 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한국의 정책결정 투명성은 세계 123위로 알제리 수준이고, 법체계 효율성은 74위로 카메룬과 비슷하다. 심지어 테러에 따른 기업비용이 93위로 테러 위험때문에 기업하기가 어려운 나라로 분류돼 있다. 상식적으로 수긍할 수 없는 결과다. 문제는 금융경쟁력의 핵심 항목인 가격적정성, 서비스의 이용가능성, 은행의 건전성 등에 대한 평가다. 이 항목들의 진단은 금융개혁의 방향과 직결되기 때문에 정확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도 심각한 오류가 있다.

 가격적정성을 보면 홍콩, 싱가포르, 미국 등이 높은 점수를 받아 상위권에 있다. 이와달리 한국은 89위로 대출 이자나 수수료 가격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현실은 반대다. 미국이나 영국처럼 금융 선진국은 타행 송금 수수료가 한국의 10배 이상 비싸다. 또 기준금리나 예금금리가 0%인 미국은 장기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4% 정도인 반면 한국 예금금리는 1.5% 임에도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2% 중반으로 낮은 편이다. 다음으로 99위라는 국내 금융서비스의 이용 가능성을 보면 은행계좌 보유율은 94%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지난 2002년에는 1인당 카드발급수가 급증하면서 신용카드 사태를 치를 지경으로 한국의 금융 문턱은 낮다. 은행 건전성의 가장 객관적 평가는 글로벌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이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한국의 은행은 A등급으로 투기등급인 브라질의 국가 신용등급 BB+보다 5단계나 높다. 하지만 WEF의 조사에선 브라질 은행의 건전성은 27위고 한국은 에디오피아 수준인 113위다.

 조사결과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는 것은 증상에 대한 오진으로 금융개혁의 핵심이 흐려질까 우려해서다. 이번 조사결과를 금융소비자가 그대로 믿는다면 한국에서는 금융개혁을 통해서 금융서비스의 가격을 더 낮추고 이용가능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금융개혁의 핵심과제는 다음 두 가지가 되어야 한다. 우선 실물경제에 금융 혈류가 잘 흐르게 하고 둘째는 금융이 독자산업으로써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고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적 서비스 산업이 돼야 한다. 금융의 혈류가 제대로 돌려면 기업의 생애주기에 맞는 금융의 단계별 역할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은행의 문을 본격적으로 두드리기 전인 창업 단계를 책임질 금융 즉 모태펀드, 벤처펀드, 벤처캐피털 등 위험투자자본의 집중적 육성이 시급하다.

 한편으로는 성숙기를 지나 고령화 단계의 기업이나 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기존 기업군도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탈바꿈을 하도록 해야 한다. 경제에 새순이 돋게 하는 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사모펀드가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풀어줘야 한다. 기업의 창업기와 노후를 책임질 금융부분이 취약해서는 금융의 선순환이 이루어질수 없다.

 금융이 전략적 서비스 산업이 되기 위한 해답은 금융산업의 수익성을 높이는데 있다. 국내 은행의 수익성이야 말로 세계 83위(2013년 기준)로 최하위 수준이다. 은행의 수익성이 지금과 같이 자본비용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 지속되면 은행은 위험자산을 늘릴 수 없어 경제 혈류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 할 수 없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금융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해 국민의 세금을 축낼 위험까지 잉태할 수도 있다. 돈 못 버는 기업치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본적이 없다. 한국 금융산업의 심각한 저수익성을 못 견뎌 한국에 진출했던 글로벌 금융사가 최근에 사업을 축소하거나 아예 철수하고 있다. 이를 보면서 토종 금융회사의 승리라 착각하고 박수 칠 일이 아니다. 일자리를 줄이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일이다. 돈 벌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글로벌 금융사가 더 많이 투자하고 진출해서 국내 금융사와 함께 영업해야 한다. 이것이 금융이 독자 산업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경쟁력 상승에 기여하는 길이다.

하영구 은행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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