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군부 출신 대통령 “평화적 정권 이양 하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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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여사(左), 테인 세인 대통령(右)

지난 8일 치러진 미얀마 총선의 승리를 선언한 아웅산 수지(70) 여사가 본격적인 집권 행보에 나섰다. 수지 여사는 11일 테인 셰인 대통령과 군부 실권자인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 쉐 만 하원의장 등 3명에게 서한을 보내 다음 주중 회동을 제안했다. 수지 여사는 서한에서 “나라의 존엄을 유지하면서 평화적 방법으로 국민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만나서 실현 방안에 대해 논의하자”고 했다. 대통령과 하원의장은 즉각 제안을 수용했다. 흐툿 미얀마 공보장관은 “다만 선거관리위원회의 모든 활동이 종료된 후에 만나겠다”며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과 미얀마 군부는 공정하고 자유롭게 치러진 총선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주의민족동맹(NLD)는 "대통령이 편지를 보내와 평화적 정권 이양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야당 NLD “약속 편지 보내와”
군부도 “총선 결과 존중할 것”
수지 “대통령·군·의회 회동” 제안
군부와 협력 관계 맺어온 중국
수지·오바마 손 잡을까 조바심

 미얀마 선거관리위원회는 이날 수지 여사가 지역구인 양곤 외곽 코무에서 5만4676표를 얻어 재선이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이날 현재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는 개표가 완료된 하원 149석 중 134석(90%), 상원 33석 중 29석(88%)에서 승리를 확정지었다.

 25년 만에 치러진 자유 선거에서 압승했지만 NLD의 단독 집권은 어렵다. 미얀마 헌법은 외국 국적의 자녀를 둔 수지 여사의 대통령 선거 출마를 금지하고 있다. 또 군 최고사령관이 국방·내무·국경장관 등 정부 핵심 요직을 임명할 수 있다. 군부는 로힝야족 등 소수민족 반군과의 분쟁 등을 이유로 기존 특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밝혀 왔다. 수지 여사가 군부와 집권 통합단결발전당(USDP)에 대화를 제의한 것은 NLD가 상·하원 과반을 차지하더라도 단독으로 집권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지난 9일 사설에서 “NLD가 총선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군부가 갖고 있던 군사·경제 권한이 민간으로 이동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앞으로 민주적 권력과 기존 권력은 마지못해 협력하거나 투쟁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또 하나의 걸림돌은 경제다. 미얀마는 2011년 형식적으로 권력을 민간에 이양하면서 경제 개방 정책을 실시했다. 미얀마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개방 첫 해인 2011년 5.9% 성장한 이후 연 7~8%대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1인당 GDP가 1200달러(약 140만원, 2014년 기준)로 여전히 가난하고, 전력 공급을 받을 수 있는 사람도 인구의 30%를 밑돈다. 최근 3년 간 무역수지 적자가 크게 늘어난 점도 미얀마 경제에 부담이 되고 있다.

 미국 등 서방이 1990년 군부 쿠데타 이후 시행중인 경제 제재도 경제 발전을 가로막는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2012년 미얀마와 국교를 정상화하고 단계적으로 제재를 완화하고 있다. 미국과의 관계가 좋아지며 민정 출범 후인 2011년 9월 테인 셰인 대통령은 중국과 합의했던 36억 달러 규모의 미트소네 댐 건설을 잠정 중단하는 등 중국 일변도의 대외정책 수정에 나섰다.

 중국은 수지 여사가 집권할 경우 1962년 군사 쿠데타 이후 밀접한 관계를 맺은 중국과 거리를 두고 미국 등 서방과 관계를 강화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아시아 회귀를 선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수지 여사가 손을 잡을 경우 중국의 출구는 좁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승리가 중국 사회에 미칠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環球時報)는 10일 사설에서 “미얀마가 미국에 경도되는 것은 거대한 위험을 의미하며 미얀마가 새롭게 얻은 전략적 공간과 자원을 훼손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수지 여사가 집권해도 경제적으로 밀접한 중국을 무시할 순 없다. 중국과 미얀마의 무역액은 지난해 259억 달러로, 2억 달러도 안 되는 미국의 130배가 넘는다. 수지 여사로서는 중국과 적정거리를 유지하면서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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