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2015년 중국은 1993년 한국을 보면 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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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1980~2015년)과 중국(2000년 이후)의 소비 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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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 세계은행·KB투자증권

중국의 현재 상황을 알려면 22년 전 한국의 변화상을 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정호 KB투자증권 연구원은 “2010~2015년 중국의 소득ㆍ소비ㆍ산업구조 등은 1988~1993년 한국 성장모습과 매우 닮아 있다”며 “2016~2020년 사이 중국의 변화상을 전망하는 것도 1998년 이후 한국을 보면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경제성장론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 중 하나가 '루이스 전환점'이다. 저임금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경제성장이 둔화하는 현상을 말한다. 경제성장 초기엔 노동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다. 그래서 값싼 노동력을 이용해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규모가 일정수준에 이르면 노동수요와 공급이 역전되는 순간이 온다. 이렇게 되면 임금이 상승해 노동력만으로는 이전과 같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 없다. 김 연구원은 “중국은 2010년 노동수요와 공급이 역전되는 루이스 전환점을 맞이했다”며 “주변 신흥국에 비해 가격 경쟁력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선진국에 비해 기술력과 품질이 뒤쳐지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도 27년 전인 1988년 이후 루이스 전환점에 진입했다.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제조업 성장이 한계를 보였다. “김 연구원은 한국은 제조업에서 가격이 아닌 반도체 등 기술 경쟁력을 갖춘 산업으로 변화하며 성장했다” 며 “현재 칭화유니그룹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반도체 사업 진출에 나서고 있는 등 중국의 산업구조 변화는 한국을 오마주한 측면이 크다”고 평가했다.

소비 행태도 비슷하다. 1980년대 후반 한국에서 일본의 조지루시사의 ‘코끼리 밥솥’ 열풍이 일어나고 일본산 화장품의 상승세가 일어났다. 현재 중국에서 한국 쿠쿠전자의 밥솥이 열풍이고, 한국을 방문한 중국 관광객들이 한국 화장품을 대량으로 사가는 현상과 비슷하다. 김 연구원은 “소득과 소비구조가 고도화 되면서 자국 공산품보다 질좋은 외산 상품을 가져가기 위한 열망이 확대된다”고 분석했다.

한국 입장에선 이러한 중국의 변화에 발맞춰 수출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은 그동안 중국에 2차산업, 중간재 위주로 수출을 해왔다. 김 연구원은 “한국의 경우 90년대 들어 전자, 자동차, 특수기계 등이 지속적으로 상승했다”며 “중국 역시 이와 비슷한 추세를 보이기 때문에 현재 나타나고 있는 중국 수출의 감소는 일시적 현상이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벤치마킹할 대상은 일본이다. 중국이 한국의 과거와 유사하다면 한국의 미래는 일본과 유사하다. 일본도 90년대 한국의 산업구조 변화에 발맞춰 수출품목을 변화했다. 김 연구원은 “일본은 90년대 한국의 산업이 고도화하면서 화학제품 및 연료, 비철금속, 기계, 전선 등의 수출을 줄여야 했다”며 “일본이 무선통신기기·자동차·고급 반도체· 플라스틱·요업 등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제품으로 확대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우려할 점도 있다. 중국의 부채구조가 과거 한국과 유사해서다. 2014년말을 기준으로 중국의 부채 총량은 국내총생산(GDP)대비 205%다. 김 연구원은 “부채 수준이 일본(382%) 등 선진국에 비해 높다고는 할 수 없지만 중국은 금융시스템이 안정적이지 못하고 지나치게 기업부채(157%)에 몰려 있는 것이 문제”라며 “그림자 금융, 부동산 뇌관이 터져 자산시장의 버블붕괴가 발생하면 한국이 과잉 투자와 부채로 1997년 말 외환위기를 겪었던 것처럼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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