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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추억] 송산 신기철 선생 별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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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항일 독립운동가이자 국어학자인 송산(松山) 신기철(申琦澈)선생이 23일 오전 1시30분 타계했다. 81세.

고인은 사전 편찬을 필생의 과업으로 삼아 평생 외길을 걸어 왔다. 1922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난 선생은 춘천고등보통학교(춘천고보)에 재학 중이던 38년 항일운동단체인 '상록회'의 회장을 맡아 활동하다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체포돼 2년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이곳에서 사전 편찬의 중요성에 눈을 뜬 송산 선생은 출옥 이후 평생 사전 편찬에 힘썼다. "나의 종교도, 철학도, 애인도 사전 편찬이다. 아내고 아들이고 사전 편찬에 뜻을 같이 하지 않으면 동지가 아니다"는 평생 지론이 유언 아닌 유언처럼 남아 있을 정도다. 해방 이후 재직한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직을 50년대 초 스스로 그만둔 것도 사전 편찬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59년에 '표준국어사전'(을유문화사)을 처음 펴냈고, 75년엔 '새 우리말 큰 사전'(삼성출판사)을 친동생 신용철(작고)선생과 함께 펴냈다. 국가 기관이 아닌 개인이 이같은 사전을 펴낸 일은 일석 이희승 선생의 업적에나 견줄 만한 귀한 사례다.

고인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75년 이후 민족 문화를 집대성하는 사전 편찬을 목표로 세운다. 그로부터 20여년간 자료를 수집하고 집필했다. 그 성과가 '한국문화대백과사전'(전10권, 2백자 원고지 12만장 분량)으로 묶여 올해 말 출간될 예정이다.

'한국문화대백과사전'의 자료 수집에 얽힌 사연은 후학들을 더욱 숙연하게 한다. 지난해 초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한 서점에서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이틀간 북한 관련 자료를 조사하기 위해 서서 책을 보다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송산 선생은 77년엔 대통령 표창을, 90년엔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용월씨와 신상윤(재미).상대(재미).상진(산단에너지 경영관리팀장)씨 등 아들이 있다. 빈소는 서울 영동세브란스병원, 발인은 25일 오전 10시, 장지는 대전현충원 애국지사묘역이다. 02-572-0099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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