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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보안 최고등급 국방과학연구소엔 ‘KF-X’ 레이더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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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대전광역시 유성구 수남동 국산 무기개발의 본산인 국방과학연구소(ADD). 국내에서 가장 보안등급이 높은 '가'급 보안시설이다. 1970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천명한 이후, 이를 수행하기 위해 비밀리에 무기를 개발해 왔다. 그래서 줄곧 이 곳은 외부엔 공개하지 '못할' 장소였다.

지난 6일 ADD가 굳게 닫아 왔던 '비밀의 문'이 열렸다. ADD 본관에 들어서자 환영 플래카드 대신 ‘휴대폰의 사용을 금지한다’는 경고문이 곳곳에 붙어 있었다. 기자들은 휴대폰 카메라와 녹음장치에 가림용 테이프 붙이는 등 까다로운 출입 절차를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ADD 관계자는 “특히 미사일 개발부서 등 고도의 보안을 요하는 일부 부서는 타 부서 연구원들도 담당자의 안내를 받아야 한다”며 “연구소 외곽은 군 부대가 경계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삼엄한 보안 속에 연구실(전자전 비행모의시험실) 앞에 도착하자, 제일 먼저 둥근 원판(반지름 30cm)에 금색 소자가 1000여개 꽂혀 있는 레이더가 눈에 들어왔다.

AESA(능동 위상배열) 레이더 시제품이 언론에 처음으로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이 레이더는 KF-X(한국형 전투기)개발을 위한 핵심 4개 기술 중 국내개발이 가장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항공전자(항전)장비다.

KF-X의 눈에 해당하는 AESA 레이더는 1000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색할 수 있는 장비다. 기존 전투기의 레이더는 전자파를 쏘는 장치가 상하 좌우로 왔다갔다 하면서 반사돼 오는 레이더 파를 감지해낸다. 반면 AESA레이더는 동시에 전방으로 전자파를 발사해 공중과 지상, 해상의 표적을 추적한다.

ADD는 이날 오전 이론적인 설명을 한 뒤, 오후 들어 기자들에게 AESA의 성능을 직접 시연했다. ADD관계자는 "현재는 제작한 시제품으로 지상에서 성능을 테스트 하는 단계"라며 "가상의 표적을 탐지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제 AESA의 탐지 능력을 보시겠습니다"는 안내자의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위잉~"하는 ASEA에서 굉음이 시작됐다. ADD 관계자는 "레이저파를 발사하는 장치와 냉각장치 등이 가동되는 소리"라고 설명했다.

이날 실험은 1.2㎞ 떨어진 곳에 모의 표적을 설치하고 전자(레이더)파 반사 시간 조절을 통해 모의 표적이 50노티컬마일(92㎞) 거리에서 접근하는 상황을 연출했다. AESA 레이더는 모의 표적이 44노티컬마일(약 81㎞) 정도 떨어진 곳에 들어오자 이를 포착해냈다. 정홍용 ADD 소장은 “AESA 레이더 개발이 시험개발 기준으로 75~80% 완료했다”며 “현재 500여개가 꽂혀 있는 TR(트렌지스터) 모듈을 KF-X가 목표로 하는 1000개까지 늘리는 것은 예산만 투입되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이미 500모듈 개발은 성공을 했고, 1000개의 모듈을 개발하는데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탐색과 추적 능력도 그만큼 커지게 된다.
'남은 과제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 소장은 “고열을 식혀줄 균일한 냉각기술 확보와 모듈 소형화·경량화“라고 답했다.

ADD가 밝힌 것처럼 현재는 80%수준이다. 전투기에 이 레이더를 탑재하기 위한 100%의 개발을 위해선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이 남아있다. 남은 과정에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도 모른다. 현재 지상개발 시험 단계의 시험을 마치면 ADD는 공항 인근에 연구실을 마련해 옥상에 레이더를 가져가 실제 항공기들을 대상으로 시험(roof laboratory)을 하게 된다. 이 과정을 넘기면 화물기에 레이더를 장착해 실제 공중에서 테스트도 해야 한다. ADD관계자는 "지상의 환경과 공중에서 실제 기동을 하는 것은 다른 환경"이라며 "빠른 속력과 기동을 해야 하는 전투기의 경우엔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필요할 경우 이미 개발을 완료한 유럽국가들의 도움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영국(셀렉스사) 등으로부터 시험항공기를 대여해 해외 테스트 베드(성능 시험장) 등에서 4년간 100차례 이상 시험비행을 해야 한다.

ADD는 이어 미국이 기술이전을 거부한 IRST(적외선 탐색 추적장비)·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RF 재머(전자파 방해장비)도 모두 공개했다. 정 소장은 AESA레이더 외에 이들 3가지 기술에 대해 “이미 관련 핵심기술을 ADD측에서 확보해 외부 업체에 관련 기술을 이전해 국내 개발에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ADD 관계자는 “IRST는 함정용 개발해 장착한데 이어 전투기용으로 개조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개된 RF Jammer(전자파 방해장비)와 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는 KF-16 등의 전투기엔 이미 탑재했으며, 내부 무장창에 돌출되지 않게 탑재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라고 ADD 측은 전했다.

AESA를 제외한 다른 기술들은 이미 개발을 마치고 업체에 기술을 넘긴 상태다. 그래서 ADD는 KF-X사업의 가장 어렵고 핵심중의 핵심으로 꼽히는 ASEA레이더 개발(체계통합기술 포함)에 참여하고 다른 장비들은 국내 방산업체들이 맡을 예정이다.

문제는 미국이 기술 이전을 거부한 체계통합 기술이다. 미국은 지난 4월 AESA레이더를 포함해 IRST(적외선 탐색 추적장치, 적 항공기와 미사일의 열을 탐지하는 장치), EO TGP(전자광학 표적추적장비, 미사일 공격을 위한 표적 관리 장치), RF 재머(적이 발사한 레이더파를 교란하는 장비)와 전투기의 두뇌에 해당하는 미션컴퓨터와의 호환기술 이전을 거부했다.

정 소장은 그러나 “2021년에 AESA레이더 개발을 완료하면 이후 체계통합에 들어갈 예정인데 장비도 ADD에서 만들고 통합도 ADD에서 자체적으로 하기 때문에 ‘친구끼리 악수 내미는 것’과 같아 문제가 없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AESA를 국내기술로 개발하기 때문에 소스코드를 자체 개발하고, 미션컴퓨터 역시 국내 개발을 할 계획이어서 기술적으론 해결 가능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예산과 시간이 문제다. 국방부와 방사청등은 2025년까지 KF-X 개발을 완료할 목표를 세웠다. 그러려면 장비개발은 늦어도 2021년까지 마무리 돼야 4년여동안 테스트를 거쳐 완성도를 높일 수가 있다. ASEA레이더를 포함해 다른 장비들도 이미 기술적으로는 개발이 마무리단계지만 KF-X설계도가 나오면 적용하는건 소형화와 경량화라는 과제를 마무리해야 하는 어려운 과정이 남아있다.

이와 관련해 ADD 관계자는 "AESA레이더는 2006년부터 기술개발에 착수해 응용연구를 마쳤으며, 2019년까지 AESA레이더 공대공 모드, 2021년까지 공대지·공대해 모드를 개발하는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2025년까지 시제기 장착용 장비 개발과 통합을 완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된다는 전제가 있을 경우 그렇다는 뜻이다. 체계통합 부문을 연구·개발하고 있는 다른 ADD 관계자는 “무인항공기의 임무체계를 통합한 경험과 차기호위함의 센서 및 무장 통합 경험, 독도함과 유도탄 고소감의 전투체계 개발 및 체계통합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국내 체계통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ADD는 이날 체계통합기술 개발을 위한 상세한 기술개발 로드맵을 공개하지는 않았다. ADD관계자는 "이제 시작단계이기 때문에 정부가 KF-X의 주관업체(한국항공우주산업)와 정식 계약을 하고, 구체적인 개발 일정이 확정되면 이에 맞춰 작업을 진행해 나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대전= 현일훈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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