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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10개씩 만드는 ‘0914’ 핸드백 서울産 명품 브랜드로 키워야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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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6면

28년 동안 개발한 핸드백 스타일 17만 종, 연간 수출하는 핸드백 소매가 총액 7조원, 소속 장인 200명의 핸드백 제작 총 경력 5100년. DKNY, 마크 제이콥스, 마이클 코어스 등 미국 럭셔리 브랜드 핸드백의 30%를 제작하고 있는 가방제조업체 시몬느가 보유한 ‘숫자’들이다. 이 예사롭지 않은 기록 중에 딱 하나 없는 것이 바로 ‘자체 브랜드’다.


시몬느 박은관(60) 회장은 3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시몬느만의 가방 브랜드 ‘0914’를 지난달 19일 출범시켰다. 수산회사를 운영했던 아버지의 기대를 뿌리치고 홀로 전 세계를 누비며 최고의 가방을 만들어온 박 회장의 새로운 항해가 시작된 것이다.

서울 강남 도산공원 앞에 있는 0914 플래그십 스토어는 ‘집 속의 집’ 콘셉트의 독특한 외관을 갖고 있다. 네모반듯한 흰색 건물 안에 붉은 벽돌집 다섯 채가 옹기종기 들어선 모습이다. 건물 안도 여느 럭셔리 브랜드 매장과는 다른 분위기다. 매장과 사무공간·카페·공방·갤러리로 구성된 총 7층 건물에는 눈길 닿는 곳곳마다 예사롭지 않은 모양의 가구와 아트소품, 그림이 놓여 있다. 어림잡아도 수백 점은 넘어 보인다. 모두 박은관 회장의 수집품이다. 분위기도 종류도 다 다른데 목적은 모두 같다. ‘핸드백 디자인에 모티프가 될 만한 것’ 이다.


1년에 5개월은 외국 출장이라는 박 회장은 그 일정 중 빈티지·골동품 숍을 방문해 쓸만한 것들을 수집했다. 전문 디자이너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한길을 걷다 보니 소재나 실루엣 등 가방 제작에 영감을 줄 요소들이 한눈에 척 들어온다고 했다. 시몬느가 제작한 17만 종의 핸드백 역시 박 회장의 손길을 안 거친 것이 없다. 0914를 준비하면서도 ‘스토리가 있는 브랜드’를 위해 준비기간만 3년. 가방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과 총 641일간 9차례에 걸쳐 ‘백스테이지(bag stage)’ 전을 열었다.

0914만의 스토리와 컨셉트는.“서울에 뿌리를 둔 럭셔리 브랜드다. 한국은 이제 트렌디 소비시장으로서 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가 태동하는 근원지가 될 때가 됐다. 럭셔리 패션하우스 하나가 뿌리를 내리려면 그 브랜드의 능력과 자질은 물론 그 브랜드가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도시의 문화·사회적 성숙도가 필요한데 서울과 시몬느 모두 그 준비가 충분히 됐다고 생각한다.”


스타 마케팅’ ‘잇백 전략’을 안 쓰겠다고 장담했다.“0914는 향후 20년의 여정을 계획하고 시작한 브랜드다. 내가 은퇴할 때까지 열매를 보지 못하더라도 스타를 동원하고 입소문으로 ‘잇백’을 만들어 단기간에 주목받는 일은 안 할 거다. ‘조용히 천천히 그 대신 강하게’ 브랜드를 성장시킬 생각이다.”


똑같은 디자인은 10개 이상 안 만들겠다고도 했다.“누군가는 브랜드를 대표하는 제품이 없다고 지적하겠지만, 고객이 요구하는 다양성과 브랜드가 추구해야 할 창조성을 위해선 좀 더 많은 오리지널 디자인을 선보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들고다니는 ‘3초 백’은 우리의 가치와는 안 맞는다.”


0914의 가격대는 70만~150만 원 선이다. 커리어우먼에게 그리 부담되는 가격은 아니다. 대신 장인의 공방에서 만든 ‘전 세계 10개밖에 없는 가방’이라는 희소성을 통해 가치를 높이겠다는 전략이다.


0914 콘셉트에 많은 영감을 준 ‘뮤즈’는 누구인가. “당연히 아내인 시몬느다. 아내는 58세인 지금도 아이돌 그룹 인피니티의 콘서트를 가고, 찢어진 청바지를 즐겨 입는 자유롭고 펑키한 감각을 가졌다. 새로운 것에 호기심이 많고, 늘 젊게 사는 여성이라는 점이 0914의 콘셉트와 잘 맞는다.”


회사이름 ‘시몬느’는 박 회장이 연애시절부터 불렀던 아내 오인실의 별칭이다. 불어로는 시몽, 독어로는 시몬느. ‘이상형’이라는 뜻이다. 28년 만에 처음 독자적으로 내놓는 가방 브랜드 명 ‘0914’에도 박 회장 부부의 특별한 사연이 있다. 결혼 전 두 사람은 잠시 이별을 경험했는데 어느 날 박 회장은 묘한 꿈을 꾼다. 연애시절 자주 가던 덕수궁 앞 카페에서 아내와 만나는 장면이다. 귀신에 홀린 듯 다음날 꿈속 카페를 찾았던 박 회장은 거짓말처럼 아내와 재회했다. 아내 역시 지난밤 같은 꿈을 꿨다고 한다. 두 사람이 재회한 날이 바로 9월 14일이다. 0914에 숨은 스토리는 또 있다. 브랜드의 심볼인 ‘물고기 화석’ 모양은 10년 전 별세한 아버지의 가르침을 담은 표시다.


“1939년부터 원양어업을 크게 하셨다. 덕분에 중학교 때부터 대학 때까지 여름방학이면 짧게는 2주, 길게는 6주 동안 어선을 타야 했다. 지금은 없어진 파시(바다 위에서 배끼리 거래가 이루어지는 시장), 거대한 폭풍 등 아버지가 경험케 해준 바다와의 인연은 평생의 에너지원이자 겸손을 가르치는 목소리다.” ●


글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시몬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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