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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폼페이 유적지 낙서 vs 페이스북 댓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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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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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미디어 2000년
톰 스탠디지 지음
노승영 옮김
열린책들, 1만9800원

고대 폼페이 유적지에는 줄잡아 1만 개가 넘는 당시의 낙서가 남아있다. 초기 연구자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했지만, 요즘 사람들 눈에는 재미있는 면면이 한둘이 아니다. 특히 건물 벽면에 누군가 쓴 낙서에 다른 이들의 낙서가 따라붙은 모습은 블로그나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의 댓글을 연상시킨다. 아니, 그 자체가 소셜미디어다. 이 책의 저자에 따르면 소셜미디어는 결코 디지털 시대의 산물이 아니다. 그에 따르면 자발적으로 풍문을 나누며 사회적 유대를 형성하는 것은 뇌 구조에서도 확인되는 인간의 본성이다.

 이 책이 조명하는 소셜미디어의 역사는 그런 의미에서 고대 로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문자를 통한 소통이 대중화된 시대다. 요즘 사람들이 수시로 스마트폰을 확인하듯, 당시 로마의 정치인 키케로는 지인들에게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독촉했다. 매일 나오는 관보를 필사한 것을 비롯, 이런 편지를 통해 키케로는 멀리서도 로마의 동향을 바로바로 파악했다. 그러니 인쇄술의 등장 이후는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가톨릭 교회의 면벌부(면죄부) 판매를 비판한 루터의 소책자는 요즘으로 보면 바이럴 마케팅의 귀감이 될만한 사례다. 대중의 뜨거운 반응에 인쇄업자들이 너나없이 복사본을 찍어낸 결과, 루터의 논제는 보름도 안 되어 독일 전역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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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영국 런던의 커피하우스는 정보 공유를 위한 소셜 플랫폼의 역할을 했다. [그림 열린책들]

 저자는 이후 프랑스 혁명과 미국 독립전쟁 시기를 거쳐 월드와이드웹의 발명에 이르기까지, 소셜미디어의 역사로서 미디어 역사를 재구성한다. 지금의 디지털 소셜미디어와 닮은 점을 꾸준히 환기하는 덕에 지루하지 않다. 디지털 신기술에 미혹되는 대신 사회적 속성에 주목하는 시각이다. 이를 통해 밀턴의 『아레오파지티카』를 비롯한 언론 자유에 대한 다양한 사상과 논쟁, 최근 ‘아랍의 봄’을 두고 벌어진 혁명과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한 논쟁 같은 미디어 현상의 주요 논점 역시 짚어낸다.

 이 책이 소셜미디어로 일컫는 현상의 공통점은 정보의 생산과 유통에 다수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점이다. 고대 로마 이후 2000여 년을 아우르면, 그런 역할이 소수에 독점된 매스미디어는 그 역사가 겨우 150년에 불과한 예외적 현상이다. 달리 말해 신문·방송 같은 매스미디어가 아니라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합해 각종 소셜미디어야말로 ‘올드미디어’인 셈이다. 이 책은 이처럼 현재 시점에서 미디어의 역사를 새롭게 돌아보는 재미있는 저서다. 참고로 저자는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고, 현재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부편집장이자 디지털 책임자이기도 하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S BOX] 토론문화 지핀 17세기 영국 ‘커피하우스’

요즘에 온라인 토론방이 있다면 17세기 중엽의 유럽, 특히 영국에는 커피하우스가 있었다. 아랍에서 도래한 신음료인 커피를 마시며 한껏 수다를 떨던 오프라인 공간이다. 온갖 소문과 상업적 정보, 정치적 견해, 그리고 과학 연구의 아이디어도 오갔다. 뉴턴이 기념비적인 저서 『프린키피아』를 내놓은 것도 커피하우스에서 벌인 논쟁이 촉발점이 됐다고 한다. 반면 당시 옥스퍼드 대학은 학생들이 커피하우스에 죽치고 앉아 있는 바람에 ‘대학에서 건전하고 진지한 학업이 쇠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찬반론은 어딘가 낯익다. 1990년대초 물리학자 버너스리는 동료 연구자들과 활발한 소통을 위해 월드와이드웹을 개발했다. 그렇다고 지금 인터넷에 고급 지식만 나도는 게 아니라는 건 다들 아는 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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