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은 공무원, 명함은 삼성·LG맨 … 근무휴직제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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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 한 서기관(4급)은 지난 1월부터 공무원 신분이 아닌 사모펀드 회사에서 ‘수석심사역’으로 일하고 있다. 민간근무휴직제를 활용해 1년간의 휴직을 허가받으며 민간 회사에서 근무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사무관 시절 금융정책국에 있으면서 기회가 되면 실제 시장에서 관련 분야를 경험해 보고 싶었다. 과장 보직을 받기 전 해외 근무를 하거나 학위를 따는 것도 좋지만 민간근무휴직제를 이용해 현장에 나와 1~2년 경험을 쌓는 것도 좋겠다는 판단을 했다”고 말했다.

65곳 채용 계획, 제조업이 23곳
고액연봉 부작용 등 한때 중단도
현장 경험 공공부문 활용은 장점
로비스트로 변질될 소지 없애야

 이 서기관처럼 휴직 후 민간 기업에서 일하는 3~8급 공무원이 앞으로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갈 수 있는 회사가 중소기업으로 제한됐지만 내년부터는 삼성·LG 계열사 등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의 대기업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실제 공무원 인사 교류를 원하는 기업들의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 인사처가 지난달까지 희망 기업 수요를 조사한 결과 총 65개 기업이 74명의 공무원을 뽑겠다는 채용계획서를 냈다. 대기업이 29곳(44.6%)으로 가장 많다. 중견·중소기업은 27곳(41.6%) , 기타 단체나 협회는 9곳(13.8%)이 신청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3곳(35.4%)으로 다수를 차지했고 금융·보험 11곳(16.9%), 서비스업 9곳(13.8%), 건설·선박·운수·협회 등 기타 업종이 22곳(33.9%)이다.

 인사처는 심의위원회를 열고 근로조건, 민관유착 가능성 등 적격성을 검토한 뒤 이달 안에 대상 기업과 직위를 확정하기로 했다. 이후 각 부처로부터 후보자를 추천받아 다음달 중 최종 대상자를 50명 이상 선발한다. 선발된 공무원은 1년간 해당 기업에서 근무할 수 있고 이후 본인 희망과 성과 등에 따라 최장 3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인사처 관계자는 “공무원들은 정책과 기획 분야의 전문성을 기업에 지원하고 현장의 경험을 공직에 접목해 공공 부문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 매년 100명가량의 공무원을 파견하는 게 목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민관 유착의 부작용을 걱정한다. 대기업과 특수관계에 있는 공무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박수정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총장은 “민간 기업이 월급까지 주면서 공무원을 받으려는 이유는 뻔하다. 자칫 로비스트의 전초 단계로 악용될 수 있다. 어느 공무원이 어디에서 일했고 어디로 복귀했는지 관련 현황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추적 시스템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처 관계자는 이에 대해 “복직한 공무원은 해당 기업과 연관 있는 근무를 일정 기간 제한하고 필요시 소속 장관에게 자체 감사 권한을 부여하는 등 관리를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민간근무휴직제는 2002년에 도입됐으나 고액 연봉과 민관 유착 등의 문제로 2008년에 중단됐고 4년 뒤 재개됐다. 

황수연 기자 ppangsh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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