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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계에도 금수저…후광 있지만 부담·콤플렉스도

중앙일보

입력

금수저. 부모를 잘 만나 큰 노력 없이도 잘 사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인터넷에서는 부모 재산이 수십억원 대가 돼야 금수저로 분류된다. 스포츠계에서 금수저를 가리는 기준은 부(?)보다는 명성에 있다. 부모가 유명 선수나 지도자인 경우 자녀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클 수밖에 없다. 부모만큼 뛰어난 운동 능력을 가졌을 거라는 기대심리가 투영되기 때문이다. 일종의 후광 효과로 볼 수 있다.

'차붐' 차범근(62)의 아들 차두리(35·FC 서울)는 스포츠계의 대표적인 금수저다. 차범근은 독일 분데스리가에 진출해 10시즌 동안 308경기에서 98골을 터뜨리며 전설적인 선수가 됐다. 차두리는 축구를 시작하자마자 유명세를 탔다. 차두리는 아버지처럼 골을 많이 넣는 공격수는 아니었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대표팀에 선발됐다.

'농구대통령' 허재(50)의 두 아들 허웅(22·원주 동부)과 허훈(20·연세대)도 '금수저 형제'로 유명하다. 이들은 국가대표에 뽑힌 적이 없지만 아버지의 후광 덕분에 큰 기대를 받고 있다. 2016 여자프로농구(W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전체 5순위로 신한은행에 지명된 신재영(23)은 성인무대 데뷔전을 치르기도 전에 관심을 받고 있다. 어머니가 80년대 여자농구 국가대표로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은메달을 이끈 김화순(53)이기 때문이다.

부모와 다른 종목을 하고 있지만 부모 덕에 더 많은 관심을 받는 경우도 있다. 골프 기대주 안병훈(24)은 탁구 한·중 커플로 유명한 안재형(50)과 자오즈민(52)의 외아들이다. 안재형과 자오즈민은 냉전시대였던 89년 국경과 이념을 넘어 결혼해 화제를 모았다.

정희준 동아대(스포츠과학부) 교수는 "운동능력이 뛰어난 선수 출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좋은 유전자를 물려줄 수 있다. 또 이런 부모들이 스포츠계의 인맥으로 다양한 정보를 빨리 습득해 운동하는 자녀들의 성공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야구 모 구단 스카우트는 "선수를 뽑을 때 아버지가 프로야구 선수 출신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눈길이 간다. 현장 지도자들도 서로 인맥으로 얽혀 있기 때문에 선수 출신 부모의 자녀들은 기합에서 열외하거나 경기 출전 시간을 더 많이 준다. 대학입시에서도 혜택이 있다"고 털어놨다.

함께 운동하는 또래 선수들에게 금수저는 상대적 박탈감을 줄 수 있다. 정희준 교수는 "운동하는 아이들에게는 선수·지도자 출신 부모가 가장 좋은 스펙으로 꼽힌다. 부모의 금전적인 지원보다 운동 재능을 물려받거나 부모 인맥으로 얻는 이익이 더 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금수저가 느끼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보통의 금수저는 부모 덕분에 편안하게 살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이들도 경쟁을 해야 한다. 또한 스타 부모와 평생 비교당하는 것도 큰 스트레스다. 차두리는 "차범근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축구선수로 인정받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국민타자' 이승엽(39·삼성)은 "내 아들이 야구를 하는 건 말리고 싶다. '네 아빠는 야구 잘했는데 넌 왜 못하니'라는 소리를 들으면 내 마음이 어떻겠나"고 말했다. 대부분의 스타 선수들은 자녀에게 자신의 종목을 대물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성공한다고 해도 '부모 후광으로 성공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금수저들은 평생 극복할 수 없는 콤플렉스에 시달리기도 한다.

한준희 축구 해설위원은 "운동을 시작할 때는 부모 후광으로 일정 부분 혜택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프로는 냉정하다. 특혜만으로 스타 선수나 유명한 지도자가 될 수 없다. 결국 실력이 있는 선수가 살아남는다"며 "차두리도 치열한 노력으로 '차범근 아들'에서 '축구선수 차두리'가 됐다"고 강조했다.

프로야구 한 스카우트는 "금수저들의 재능을 잘 살리기 위해선 현장 지도자의 냉철한 평가가 중요하다. 부모의 후광을 걷어내고 선수 본인의 실력으로만 판단해야 한다"며 "부모와 인맥으로 혜택을 주다 보면 절박함이 결여돼 발전하지 못하거나 쉽게 포기한다"고 지적했다.

박소영 기자 psy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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