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 가을잠 끝냈다 '철웅'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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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이 14년 만에 한국시리즈 우승컵을 되찾았다. 두산 선수들은 마스코트 철웅이(뒤)처럼 강한 투지로 부상과 체력 저하를 이겨냈다. 김태형 감독(왼쪽)을 비롯한 선수단이 지난 31일 열린 5차전에서 우승을 확정지은 뒤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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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수빈

무쇠같이 단단한 곰들이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두산 베어스가 14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중공업 중심 모기업처럼 강해지자”
5년 전 ‘철웅이’ 마스코트 만들어
정수빈·양의지·이현승·허경민 …
아파도 출전 자청, 팀 똘똘 뭉쳐
삼성에 1패 뒤 4연승, 반전 드라마

 두산은 31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의 한국시리즈(KS·7전4승제) 5차전에서 13-2로 이겼다. 두산은 삼성 선발 장원삼으로부터 1회 2점, 3회 5점을 뽑아내며 일찌감치 승부를 결정지었다. 두산 선발 유희관은 6이닝 5피안타 2실점 호투를 펼쳤고, 7회에는 니퍼트가 구원투수로 투입돼 삼성의 기를 꺾었다. 마무리 이현승은 9회 1사 마운드를 물려받아 우승을 확정지었다. 1차전에서 8-9 역전패를 당했던 두산은 4연승을 거두며 1982·95·2001년에 이어 통산 네 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두산은 2010년 새 마스코트 ‘철웅이’를 선보였다. 중공업 위주의 모기업처럼 강한 야구단을 만들자는 뜻이었다. 이번 포스트시즌(PS)에서 두산 선수들은 철웅이처럼 튼튼하고 강했다. 외야수 정수빈(25)은 1차전 번트 자세에서 왼 검지에 공을 맞았다. 뼈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타박상과 열상을 입어 손가락이 퉁퉁 부었다. 그러나 여섯 바늘을 꿰맨 정수빈은 “쇄골이 부서졌을 때도 경기에 나갔다”며 출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정수빈은 이동일인 다음 날부터 스윙 연습을 했다. 단단히 붕대를 감고 배팅장갑에는 구멍을 뚫어 손가락을 넣은 채 방망이를 휘둘렀다. 지명타자로 나선 정수빈은 3차전에서 2타수 1안타(2루타) 2볼넷 1득점, 4차전에서 4타수 2안타 2득점을 올렸다. 5차전에서는 7회 말 쐐기 3점홈런을 터뜨리는 등 5타수 3안타 4타점을 기록했다. 타율 0.571(14타수 8안타) 5타점을 기록한 정수빈은 시리즈 MVP(66표 중 41표)에 올랐다. 정수빈은 5차전이 끝난 뒤 “이제 끝났으니까…”라며 붕대를 풀어 내보였다. 그의 손가락은 멍이 빠지지 않아 새까맸고, 퉁퉁 부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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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우승한 삼성 선수들이 한국시리즈가 끝난 뒤 열린 시상식에서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두산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삼성은 시상식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 [사진 삼성 라이온즈]

 포수 양의지(28)도 참고 견뎠다. 그는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파울 타구에 오른 발가락을 맞았다. 병원에서 내린 진단은 엄지 끝 부분 미세 골절. 힘을 줄 때마다 아파서 걷는 것조차 어려웠다. 2차전 도중 교체된 그는 3차전에서도 빠졌다. 두 경기를 모두 두산이 내주자 양의지는 “뛰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김태형(48) 두산 감독은 “의지가 다쳐서 올 시즌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진통제 주사를 맞고서라도 나가겠다고 하더라. 고맙고 기특했다”고 말했다.

 양의지는 KS 기간 내내 운동화를 신고 연습했다. 발이 압박될 때마다 아파서였다. 하지만 경기 때는 평상시처럼 발을 꽉 조이는 스파이크를 신었다. 대신 엄지 발가락 위에 통증을 줄이기 위해 패드를 댔다. 자연히 오른쪽 스파이크는 앞부분이 늘어나서 튀어나왔다. 양의지는 “아플 땐 아프지만 경기에 들어가면 모른다”고 애써 웃었다. 이병국 두산 트레이닝 코치는 “선수들이 다치는 걸 보는 순간 ‘분명히 뛰겠다고 말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선수들이 그렇다”고 말했다.

 아프고 힘들어도 꾹 참고 버틴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에이스 니퍼트는 짧은 투구간격에도 “휴식일이 짧은 건 전혀 문제되지 않는다”며 마운드에 올랐다. 마무리 이현승은 강습 타구에 왼 종아리를 맞았고, 허경민도 파울 타구에 맞았지만 아무 일 없다는 듯 경기에 나섰다. 오재원도 추운 날 치러진 2차전에서 종아리 근육통으로 교체됐지만 남은 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김현수는 “양의지도 나가는데 누가 아프다고 하겠냐”고 말했다.

 한국시리즈에 직행하지 않은 팀이 우승한 건 2001년 이후 14년 만이다. 두산이 마지막까지 쓰러지지 않고 힘을 짜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김태형 감독의 참을성이 있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이 조금만 몸이 안 좋아도 쉬게 하거나 자율적으로 훈련하도록 배려했다. 에이스 니퍼트 역시 잔부상에 시달려도 충분히 기다렸다. 한 경기의 승패에 매달리기보다는 멀리 내다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김 감독의 인내는 우승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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