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퇴 시대] 금융 강의, 텃밭 활동가 … 체력·능력 갖춘 ‘50+’ 모십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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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지점장으로 명 퇴 한 노영옥씨(왼쪽)가 지난 22일 서울 상현중학교 축제에서 학생에게 세계 화폐 그림을 보여주며 경제금융 퀴즈를 내고 있다. [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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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모작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30여 명이 옛 한양 유적을 찾는 동호회 ‘한양길라잡이’를 결성했다.

“이게 어느 나라 돈이죠. 단위는 무엇인가요?” “중국 돈, 위안입니다.”

50세 이상 인구비중 올해 34.5%
상당수가 젊고 활동 가능한 인력
경력 살려 일자리 연결해주는
인생이모작센터 9곳 확대·설치

 지난 22일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상현중학교 금융교육 부스 앞. 학생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부스를 찾았다. 퀴즈를 내는 노영옥(60)씨는 해박한 금융 지식으로 화폐와 인플레이션, 손익 같은 기초 경제 지식을 척척 설명했다. 올해 환갑인 노씨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했다. 30여 년 근무한 시중은행에서 지점장을 끝으로 55세에 명예퇴직한 노씨는 학생 300명에게 일일이 퀴즈를 내면서 지친 기색이 없었다. 그는 “강의 준비하랴 금융교육 하랴 뛰어다니다 보면 일주일이 금세 지나간다”고 말했다.

 인생의 반환점을 돌고 인생 이모작에 나서는 반퇴 세대의 사회 참여 활동이 갈수록 활발해지고 있다. 베이비부머(1955~63년에 출생한 710만 명)가 본격적으로 퇴직하고 있지만 이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젊고 건강하며 고등교육을 받은 세대다. 퇴직 후에도 활동력이 왕성하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고령화에 따른 한국의 ‘퇴직 쓰나미’가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몰아치고 있지만 이들의 인생 이모작을 도울 사회적 인프라는 너무 부족하다. 인생 반환점을 돌아선 50세 이상 인구 비중은 60년 10.9%에서 올해 34.5%가 됐다. 이는 50세를 넘겨도 상당수가 젊고 건강한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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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방자치단체는 이같이 체력·능력·활동력을 갖춘 50세 초과자가 급증하자 비상이 걸렸다. 일할 사람이 없어져 도시 활력이 떨어지고 세금 낼 사람이 줄어들어 지자체 운영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인생 후반에 들어선 시민을 ‘50+’로 이름 짓고 이들의 반퇴 생활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현재 은평구·종로구에만 있는 인생이모작센터를 모두 9곳으로 확대·설치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50세를 넘어선 시민은 시설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학습공동체·지역활동·사회투자·공공일자리·세대 통합·커뮤니티 같은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노씨가 왕성하게 사회 활동을 하게 된 것도 종로3가 도심권의 인생이모작지원센터를 통해서였다. 이곳에서 그는 자신이 평생 배운 금융 지식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약간의 수고비도 벌게 됐다. 인생이모작센터가 교육 희망자와 강의 희망자를 연결해 주는 네트워크를 갖추고 있어서다. 그는 이를 통해 올 들어 스무 차례 넘게 민생침해 예방교육에 나섰다. 복지관·노인정을 다니면서 어르신들이 피싱 같은 금융사기를 당하지 않는 요령을 강의한다. 노씨는 이런 경험을 토대로 협동조합도 만들었다. 이것도 인생이모작센터에서 멍석을 펴 준 덕분에 가능했다. 커뮤니티에 등록하면 사무실이 제공돼 활동의 근거지가 된다.

 자동차회사 판매지점장으로 조기퇴직한 이상욱(52)씨도 인생이모작센터에 마련된 인적 네트워크를 통해 활발한 퇴직 후 인생을 살고 있다. 옛 한양의 유적에 관심이 있는 그는 인생이모작센터에서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 30여 명을 만나 ‘한양길라잡이’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다. 매달 30개 강좌를 여는 그는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문화 유적지를 공부하니 삶이 흥미롭고 자부심도 생겨 좋다”고 말했다.

 청년과의 일자리 경쟁은 피하는 방향으로 활동하려는 것도 50+세대의 특징이다. 서울시 경로당 코디네이터, 요양 코디네이터, 사례관리 시니어 서포터, 도시텃밭 활동가가 모두 그런 경우다. 경로당 코디네이터는 지역사회의 자원과 연계해 경로당의 운영을 지원하는데, 어르신들의 사랑방에 머물고 있는 경로당을 마을공동체와의 교류를 통해 세대 통합과 평생학습의 장으로 탈바꿈시키고 있다. 남원준 서울시 복지본부장은 “급증하는 50세 이상 시민이 보람차게 시간을 보내면서 인생 이모작에 나설 수 있도록 지원 체계를 계속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글=김동호 선임기자 dongh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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