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주식 기피' 대책없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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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부동산시장의 과열을 막기 위한 대책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정부와 증권업계는 시중에 떠도는 막대한 부동 자금을 증권시장으로 유인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

가계저축이 비생산적인 부동산시장보다 산업자금을 공급하는 증권시장으로 많이 유입되는 것이 국민 경제에 이로움에도 불구하고 왜 부동산은 과열되고 주식은 위축되는가.

우리나라 가계의 자산 구성을 보면 부동산이 85%에 달하고 금융자산은 15%에 불과하다. 부동산 중에서 주택 외의 비율도 25%나 되고, 금융자산에서 주식의 비중은 2%에도 못미친다. 외국에 비해 부동산 선호도와 주식 기피도가 매우 높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통계다.

부동산과 주식은 투자기간, 환금성, 투자 위험, 최소 투자 규모, 분산 투자의 용이성 등 측면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으므로 어느 것이 투자수단으로서 더 우월한지를 일률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에선 왜 부동산의 선호도가 이토록 높은가. 과연 부동산의 매력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인가.

부동산은 환금성은 떨어지지만 안전성이 높고, 투자 수익성도 높다는 확신이 팽배하다. 과거 부동산 가격은 단기간에 급등했다가 장기간에 걸쳐 매우 완만하게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경험이 앞으로도 적용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률과 소득 증가율이 하락했으며, 주택 보급률의 증가에 따라 본인의 거주보다 임대 목적으로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이 증가했으므로 이제는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후에는 크게 하락할 위험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일본과 독일의 부동산 가격도 과거의 통념과 달리 지난 10년간 크게 하락했다. 한국처럼 토지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었던 홍콩에서도 지난 5년간 부동산 가격은 60% 이상 하락했다. 지난 몇년간 주식시장이 침체하면서 부동 자금이 부동산으로 몰렸던 대부분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도 부동산 버블에 대한 우려가 한껏 고조되고 있다.

한편 주식은 저평가된 상태에 있다. 상대적인 주가 수준의 평가 척도인 주가수익비율(PER)을 보면 2000년 이후 한국의 평균은 14배에 불과하지만 미국은 23배, 영국과 대만은 19배 수준이다. 최근의 주가수익비율은 단지 8배에 불과하다.

부동산과 주식의 대표격인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와 삼성전자를 비교해 보자.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한 2001년 1월 이후 강남 아파트 가격은 50% 이상 상승했다.

부동산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국내외적 환경변화를 감안할 때 강남 아파트 가격에 커다란 거품이 있다는 우려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같은 기간 삼성전자 주가는 1백20% 이상 상승했음에도 현재 삼성전자의 주가수익비율은 8배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평가된 상태에 있다.

부동산 가격의 거품 가능성과 주식의 저평가는 투자자의 자산 선택에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부동 자금이 부동산에서 주식으로 유입되려면 그동안 투자자들이 주식시장을 불신하도록 했던 요인들을 보다 과감하게 제거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기업의 지배구조와 투명성이 지난 5년간 크게 개선됐지만, 아직도 선진국에 비해서는 뒤떨어져 있다. 상장 및 등록기업, 증권사 및 투신사, 감독기관 및 자율규제 기관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제도 개선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다.

정부의 부동산 억제와 투자자 보호의 정책 의지가 확고하다는 전제 아래 이제는 우리 경제와 가계에서 부동산과 증권이 보다 균형 있게 자리를 잡아야 한다. 가계의 여유자금이 부동산시장에서 주식시장으로 흘러간다면 기업과 투자자는 물론 국민 경제 전체가 혜택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박상용 한국증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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