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서가] '세계 브랜드를 만든 한국 기업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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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이 책은 일본 사람이 쓴 한국 기업 이야기다. 사감(私感)이나 편견이 들어갈 법한데 읽어보면 비교적 객관적이다. 저자인 쓰카모토 기요시는 비즈니스 전문 저널리스트. 뉴스위크 일본지사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주로 증언과 사실에 기초해 책을 썼다.

이 책에는 저자가 발로 뛴 흔적이 역력하다. 그는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SK텔레콤 등 많은 한국 기업의 관계자를 직접 만났다.

책은 5장으로 구성돼 있다. 세계 일류가 된 한국 디지털TV.휴대전화.인터넷 가전.자동차 등의 성공 비결이 집중적으로 소개돼 있다.

저자가 LG전자 구미공장을 방문했을 때 한 엔지니어로부터 "일본은 수십년 걸려 1994년 40인치 PDP TV를 개발했다. LG전자와 삼성전자는 1995년부터 개발에 나섰지만 2001년 60~62인치의 세계 최대 모니터를 개발하는데 성공했다"는 말을 듣고 놀랐다고 고백한다.

그는 "한국 기업의 성공비결은 일본보다 의사 결정이 빠르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저자는 또 "삼성전자와 LG전자의 현장 관리자들이 불량품이 적은 이유로 약속이나 한 것처럼 교육 덕분이라고 대답한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다"고 말한다.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경이로움을 넘어 경계심마저 엿보인다. 저자는 "현대가 일본에서 본격적으로 판매를 개시하면 불꽃 튀는 경쟁이 될 것"이라며 "일본은 적어도 현대가 도요타.혼다.닛산에 버금가는 아시아 4강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일본과 달리 한국의 휴대전화는 지하철 안에서도 끊어지지 않았다"며 그 이유로 치열한 경쟁을 꼽았다. 경쟁이 한국 기업의 성공 비결임을 발견한 것이다. 이 책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내용 중간에 일본인의 입장에서 느낀 점을 넣어 단조로움을 피했다.

그는 "맹렬히 일하는 한국 기업은 '왜' 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을 것"이라고 꼬집는다. 또 " '괜찮아요'라는 한국 특유의 국민성은 한국 입장에서는 '낙관적'이지만 일본인의 눈에는 '적당 적당'"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목걸이도 아닌데 휴대전화를 목에 걸고 다니는 한국사람들이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한국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 급해서 '빨리빨리'에 익숙하다"는 지적은 오히려 상투적이다.

물론 일본인의 입장에서 한국 기업을 소상히 파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깊이가 있다기 보다는, 외국인의 눈으로 한국 기업의 현주소를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는 게 장점이다.

고현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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