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기 기자의 B사이드] 싸이홈 배경음악과 믹스 테이프의 공통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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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싸이월드에 접속했다. 이달 초 싸이홈으로 바뀐 싸이월드는 예전과 달랐다. 방명록은 사라졌고 사진첩, 게시판, 다이어리가 하나로 통합돼 콘텐트가 블로그처럼 날짜순으로 올라와 있다. 폴더가 사라진 대신 각 콘텐트에는 폴더 이름과 같은 태그가 달렸다.

배경음악은 그대로였다. 다만 모든 곡이 공개된 상태로 누구에게나 보인다. 나뿐 아니라 일촌들의 싸이홈에도 상당히 많은 곡이 있었다. 노래 하나하나 사연이 담겼다. 사귀던 사람에게 선물 받은 곡, 짝사랑한 그에게 준 노래, 시험 망치고 홧김에 산 곡 등등 이 추억의 흔적은 '믹스 테이프'와 닮았다. 믹스 테이프를 만들려면 한 곡, 한 곡 플레이 버튼과 REC 버튼을 동시에 눌러 음악을 복사해야 한다. 꽤 수고스러웠는데도 별거 아닌 듯 던지듯이 주고 '그냥 들어봐'라고 말한 기억이 난다. 음악은 마음을 담아 선물하고 선물 받을 만한 '물건'이었다. 2000년대 초 MP3 파일이 대세가 되면서 음악 듣기는 전보다 개인화됐다. 음원 사이트에서 파일을 내려받기만 했지 서로의 관심을 공유하진 않았다. 싸이 배경음악은 달랐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인데 네가 들어봤으면 좋겠어.' 이런 믹스 테이프 같은 정서가 있었다. 선물하고 선물 받는 콘텐트였다.

싸이홈의 배경음악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과거의 기록이 지워지지 않아, 잊혀질 권리까지 떠오른 지금이지만 한편에선 너무 쉽게 없어진다. 프리챌이 그랬다. 20대 시절 나와 친구들이 프리챌에 올린 사진과 글은 다시 볼 수 없다. 한 인터넷 사이트의 폐쇄만으로 청춘의 일부가 날아간다. 인터넷 트래픽의 대부분을 담당하는 몇몇 대형 서버가 사고로 파괴된다면 상상도 못 할 재난이 닥칠 거다. 한 시대의 기억이 통째 공중분해 될 수도 있다.

매일 새로운 곡이 쏟아진다. 대부분 디지털 싱글이다. 음원 사이트는 물론 IT 공룡 구글의 유튜브조차 영원하란 법은 없다. 반면 아버지가 듣던 거의 40년이 다 된 LP는 지금도 집에 있다. 가끔 LP를 보며 아버지의 청춘을 떠올린다. 분리수거하거나 폭탄이 떨어지지 않는 한 LP를 통해 트로트와 엘비스를 함께 듣는 청년을 상상할 것이다. 나의 믹스 테이프를 보며 내 자식도 똑같은 상상을 할지도 모른다. 싸이홈 배경음악은 그때까지 있을까.

강남통신 김중기 기자 haahah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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