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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 풀 계기” 오바마, 한·일 상대로 물밑 압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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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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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한·일 정상은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초청을 받아 3자회담 형식으로 네덜란드 헤이그 미 대사관저에서 만났다. 회담 장소에 도착한 박근혜 대통령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42개월 만에 열리는 11·2 한·일 정상회담은 우여곡절의 산물이다. 회담 개최를 닷새 앞둔 28일에야 일정이 확정됐다. 그나마도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이날 오전 보도한 뒤 두 나라 정부가 발표하는 형식이었다.

3년6개월 만의 양자회담 성사까지
“일본과 잘 된 정상회담 하고 싶다”
박 대통령, 방미 때 명확히 밝혀
미국, 3국 공조 복원에 적극 나서
리퍼트 대사 ‘입장차 조율’ 메신저로

 진통이 컸던 만큼 신경전의 연속이었고, 성사 과정도 복잡했다. 1등 공신은 미국이다. 외교가에선 “한·일 정상이 만나지만, 그 사이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박근혜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지를 처음 공개적으로 표명한 건 방미 기간(13~16일) 중이었다. 15일(현지시간)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의 정상회담을 (한·중·일 정상회의가 열리는 기회에)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다음날 한·미 정상회담에서도 박 대통령은 “한국은 일본과 ‘잘 된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는 뜻을 명확히 밝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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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림돌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등 과거사 문제였다. 박 대통령이 귀국한 뒤 외교 당국자들은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를 메신저 삼아 “회담이 열리면 어떤 식으로든 위안부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입장을 일본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미 측은 일본 측에 “이번 정상회담이 양국 간 현안인 위안부 문제를 푸는 계기로 작용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수차례 전달했다. 한국 측에는 “위안부 문제가 심도 있게 논의된다면 일본이 원하는 대로 이번에 양국 (위안부) 협의가 최종 해결이 될 수 있다는 확인을 해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입장을 전달해 왔다고 한다. 회담을 추진해온 외교 소식통은 “일본이 미국을 상대로 얼마나 치열한 로비를 벌였겠느냐”며 “아베 총리는 한국보다도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가 이렇게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추진해온 측면도 있다”고 전했다.

 한·미·일 협력의 복원을 원하는 미국이 나섰지만 양측의 간격은 쉬 좁혀지지 않았다. 양국 간 신경전은 계속됐다.

 9월 초 박 대통령의 방중 전후부터 시작된 일정 조율에만 두 달을 채웠다. 이미 언론을 통해 한·중·일 정상회의는 11월 1일, 한·일 정상회담은 다음 날인 2일 열릴 것이란 보도가 계속 나오는데도 양국 정부는 공식 발표 직전까지 긍정도 부정도 않는 ‘눈 가리고 아웅’식 줄다리기를 했다. 위안부 문제 등을 두고 물밑 ‘샅바싸움’을 벌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방미하기 전에 한·중·일 3국 정상회의 일정을 발표하려던 정부 계획도 무산됐다.

 정부 관계자는 “끝까지 양자 일정이 문제였다. 한·일이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할지를 놓고 조율하는 동안 중국 측이 31일 한·중 정상회담 일정을 선점했다”며 “3국 정상회의에 앞서 한·일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일본의 바람이 꼬인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양국 정상이 등 떠밀려 만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함에 따라 한·일 정상회담의 결과물에 대한 기대치도 낮아지는 분위기다.

 외교 소식통은 “가시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측의 입장은 크게 변한 게 없다고 한다.

연세대 손열 국제학대학원장은 “정상회담은 역사 문제와 안보·경제협력을 분리하겠다는 박 대통령의 ‘투트랙’ 외교의 본격화”라며 “두 정상이 얼굴을 마주하는 것만도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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